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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투 타짜'...그린티 작가의 효도법

장상옥 | 기사입력 2022/01/23 [13:27]

'화투 타짜'...그린티 작가의 효도법

장상옥 | 입력 : 2022/01/23 [13:27]

▲ 딸과 화투를 치며 환히 웃고 있는 부모님

 

▲ 어머니에 약을 건네주고 있는 아버지의 사랑의 손길




"엄마, 누가 더 이뻐?"

"...."

"엄마, 야랑 나랑 누가 더 이뻐?"

"으음....."

"엄마, 첫째딸과 둘째딸 중에 누가 더 이뻐?"

"ㅎㅎㅎ"

 

친정 언니는 엄마에게 집요하게 물어본다. 파킨스병으로 아픈 엄마는 처음엔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고 관심이 을 보이지 않는다. 첫째딸은 엄마와 눈동자를 맞춘 후 이쁜 표정을 지으면서 익살스럽게 재차 물어본다. 누가 더 이뻐냐구? 엄마는 난감해하면서 응답을 피한다. 첫째딸은 부엌에서 일을 하다가도 멀뚱하게 앉아있는 엄마에게 다가가서 다시 짓꿎게 물어본다. 누가 더 이뻐냐며 손가락으로도 알켜달라고 어린 꼬마처럼 몸을 흔들며 조른다. 결국 엄마는 빵터지며 손가락을 애매한 방향으로 가르킨다. 그제서야 60세를 바라보는 교장샘 언니도 따라 웃으며 엄마를 꼭 안아준다.

 

"엄마, 이 찟찌 누가 먹었어?"

"..."

"엄마, 이 찟찌 누가 제일 먼저 먹었어?"

"오빠"

"엄마, 아니잖아"

"..."

"엄마, 오빠보다 누가 먼저 먹었잖아."

"..."

"엄마, 이 찟찌 오빠보다 먼저 먹은 사람 누구야?

"ㅎㅎㅎ 아버지"

"엄마, 내 동생 낳아줘. 내가 키워줄께"

 

우리들은 빵 터졌다. 엄마도 빵 터졌다. 모두 서로 쳐다보며 한참을 시원하게 웃었다. 친정 언니는 엄마 찟찌를 손으로 만지면서 짖궂게 19금 질문을 계속 하였다. 엄마가 반응을 보일때까지 놀리면서. 엄마의 표정이 살아났다. 파킨스 약도 좋지만, 엄마에겐 웃음이 명약인 것 같다.

 

언니와 남동생은 친정 부모님의 보호자가 되었다. 장거리 출퇴근을 하면서도 수시로 부모님댁에 찾아온다. 두 사람이 부모님께 인사를 하고 나서  하는 첫번째 일은 냉장고와 냉동실을 열어보는 거다. 요플레는 있는지? 유통기한이 남았는지? 국거리는 있는지? 김치는 있는지? 상한 음식은 없는지? 글구 쿠팡으로 식재료를 주문하거나 마트에서 사와서 냉장고를 채워둔다. 구순 아버지가 아픈 엄마와 본인을 위한 아침밥과 저녁밥을 드실 수 있게 이것 저것 챙겨놓는다.  

 

그 다음 언니가 하는 일은 아버지의 화투 상대가 되어주는 것이다. 아버지는 화투를 심심풀이로 시간때우기로 즐겨하신다. 다른 자식들은 화투에 별 흥미가 없어 아버지의 놀이 친구를 하지 않는다. 그러나 언니는 기꺼이 아버지를 위해 동전을 준비하고 만원짜리 지폐를 화투판에 일부러 꺼내놓는다. 유일한 아버지의 낙이 자식들과 화투 치는 것임을 알고 있기에. 그나마 얼마전까지도 아버지는 엄마랑도 화투를 치면서 엄마에게 화투를 세고 돈계산을 시키곤 하셨었다.

 

"고우"

"피박 안 받고?"

"그래도 고우"

"..."

"이런, 피 한개 더 와야 하는데"

"봤지. 내가 삼점이다. 스톱"

"에이, 아버지 고우 하시죠?"

"안해, 스톱"

"제가 독박이네요. 얼마 드리면 되요?"

 

화투판에서 언니와 아버지가 나누는 말이다. 언니는 화투 타짜인 것 같다. 그런데 남들과는 다른 타짜임이 분명하다. 언니는 고스톱판에서 무조건 고우를 외친다. 아버지가 이겨서 돈을 따실 때까지. 그래서 못 먹어도 고우인거다. 언니는 화투판을 웃게 만드는 묘한 재주가 있다. 나는 도저히 흉내낼 수 없다. 재미있게 화투를 치고 나서는 화투판에 나와있는 동전과 지폐를 모두 아버지쪽으로 밀친다. 아버지는 겸연쩍어 하시면서 지폐는 주머니에, 동전은 화투 전용 동전지갑에 넣으신다.

 

"친구, 어디가?"

"대구 친정에"

"놀러가네"

"효도하러가지"

"좋겠다. 갈 곳이 있어서"

"혼자서?"

"응, 기차타고"

"부럽다. 혼자서 갈수 있으니. 난 혼자서 못 갈까봐 걱정이거든"

 

몇일전 친정 대구에 내려가기 전에 친구와 통화한 내용이다. 친구는 나에겐 찾아갈 수 있는 친정이 있고, 게다가 혼자서도 갈 수 있는 건강이 있다며 나를 많이 부러워했다. 나는 친구의 말을 듣자, 순간 많이 부끄러워졌다. 고대하던 방학이 오자 난 쉬고 싶었다. 하지만 연로하고 편찮은 양쪽 부모님을 뵙고 싶었고 또 그래야 하기에, 4일간은 시댁 예천에서 그리고 또 4일간은 친정 대구에 가니 나름 "효도"한다고 떠벌렸던 것이다.

 

부끄러운 나는 언니에게 배운다. 아버지와 엄마를 웃게 만드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운지를, 그리고 진짜 효는 한번에 확 하고 마는 게 아니라, 소소한 일상에서 온 마음과 시간으로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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