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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와 글쓰기

임병량 시니어 기자 칼럼

장상옥 | 기사입력 2022/10/24 [23:06]

편지와 글쓰기

임병량 시니어 기자 칼럼

장상옥 | 입력 : 2022/10/24 [23:06]

▲ 임병량 시니어 기자

 

 

  며칠 전 친구 K가 보낸 사진 넉 장을 받았다. 편지 두 장과 봉투 앞뒷면의 사진이다. 3년 동안의 군 생활 중 제대 몇 개월 남겨두고 K에게 보낸 편지였다. 아마 그때가 72년으로 기억된다. 50년 전에 보낸 편지가 카톡으로 돌아왔다. 무려 반세기 동안 편지를 보관한 K의 마음은 오래 묵은 장맛처럼 깊었다. 우리의 젊음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그때 그 시절의 애틋했던 마음은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다. 편지 내용은 답장이 없어 안타까운 심정을 표현했다. 왜 그렇게 답이 없느냐는 글을 읽어 내려갈 때는 그 시절의 모습이 뚜렷이 되살아났다. K는 제대 후에 꼭 만나고 싶었던 소중한 친구였다. 

 

  군 생활을 마무리할 시기가 되면 병아리가 자라서 수탉이 된다. 병아리는 편지 쓸 시간조차 부족하다. 하지만 수탉이 되면 여유가 있다. 고향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편지를 썼다. 당시에는 편지가 유일한 의사소통을 주고받는 수단이며, 존재감을 알리는 통로였다. 아무리 시대가 변했다지만, 사랑과 정을 나눈 그릇은 편지만 한 게 없다. 글쓰기는 뇌 활용뿐만 아니라 건강에도 도움 된다. 뇌는 사용할수록 발전하지만, 방치하면 녹슨 기계가 되어 치매의 원인이 된다. 핸드폰이 보급되면서 가족 전화번호까지 잊어버린 뇌를 탓하고만 있을 일은 아니다. 편지쓰기가 부활하여 깊은 정을 나눌 수 있는 그때가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K는 중학생, 난 고등학생이었다. 그는 한눈에 봐도 착하고 공부 잘한 모범생으로 생각과 행동이 남달랐다. 졸업 후에는 미래를 위해 고난과 함께하던 시간이었다. 우리는 한눈팔지 않고 자신의 길을 걸었다. 그런데도 눈에 보이지 않으면 멀어지는 게 사람의 관계다. 서로가 힘든 생활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연락이 두절 되었다. 그렇게 무심한 세월은 반세기가 훌쩍 지났다. 

 

  지난해 7월 무덥던 날 소래포구에서 만났다. 강산이 다섯 번이나 변한 세월에 떠밀려 중학생이 반백이 되었다. 얼굴은 많이 변했지만, 그 형상은 유명 화가가 그린 그림으로 세월에 퇴색된 진품이 되었다. 우리가 오래된 추억을 나눌 수 있는 끈이 바로 편지였다. K는 편지 받던 그 시절이 가장 힘들었던 때라고 말하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K의 이야기가 길어질수록 자꾸만 콧물이 나왔다. 눈물을 참으면 콧물로 변하는가 보다. 생각 없이 물 한 컵을 다 비웠다. 친구의 입장은 헤아리지 못하고 답장만을 기다렸던 마음이 미안함으로 되돌아온 순간이다.

 

  친구는 말했다. “아버지는 서울의 중심부 은행에서 근무한 자랑스러운 아들이 보고 싶었을 것이다. 어느 날 영업장을 쳐다보니 아버지가 와 계셨다. 어떻게 여기까지 찾아오셨을까? 만감이 교차하면서 복받친 감정을 꾹 참고, 아버지께 인사드리며 손을 잡고 영업장을 빠져나왔다. 천릿길을 찾아온 아버지는 “나를 보고 싶었다”고 했다. 엄마를 일찍 보낸 아버지 심정, 어렵게 자란 막내아들, 자랑스러운 모습, 뒷바라지 못해 준 아버지의 마음, 모두 한눈에 읽었다. 풍성한 효도 못 한 자식은 지금도 후회스럽다”면서 울컥한 심정을 털어놨다. 

 

  남자가 겪을 수밖에 없는 생존경쟁의 틈새를 가족은 잘 모른다. 가족부양과 삶의 굴곡진 버거움은 남자들의 몫이다. 백발이 성성한 우리의 모습이 꿈나라에서 본 동화 속의 주인공이 되었다. 쳐다만 봐도 따뜻한 감정이 눈으로 전달된다. 반세기의 삶이 무심하고 야속했다. 이제라도 만날 수 있어 감사하다. 오늘 우리의 만남은 새로운 출발점이 되었다. 

 

임병량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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