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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다잉 특별기고> 우리 한번 생각을 해 보자(2)

송계순 부천웰다잉문화연구원장

장상옥 | 기사입력 2024/08/04 [16:24]

<웰다잉 특별기고> 우리 한번 생각을 해 보자(2)

송계순 부천웰다잉문화연구원장

장상옥 | 입력 : 2024/08/04 [16:24]

 

▲ 송계순 부천웰다잉문화연구원 원장     ©장상옥

 

 

 

인생의 길에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서다, 한 인간의 이성이나 과학, 종교나 문화(文化)에 과연 그 답이 있을까? 소위 말하는 '저명한 자(者)'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인 즉 과학자(科學者), 인문(人文)학자, 철학자(哲學者), 사학자(史學者) 등 그들은 하루에도 몇백 개씩 그 답을 쏟아낸다. 하지만 그중에 중요한 질문들에 대한 답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이유는 관심사(關心事)가 아니란다, 전공(專攻)이 아니란다, 답이 없는 질문이란다. 그리고 누구나 저마다의 인생의 답(答)을 가지고 있지만, 아무도 남과 비교해보려 하지 않는 질문이다. 그렇지만 '나는 왜 사는가?'에 대해 '나는 이런 답을 가지게 되었다. 

 

여러분은 과연 어떻습니까? 사실 배가 고프면 식당(食堂)을 가고, 뭔가 알고 싶을 때는 도서관(圖書館)을 가고, 심심하면 극장을 가서 영화(映畵)를 보고, 몸이 아프면 병원(病院)에 간다. 그런데 먹어도 배고프고, 마셔도 갈증(渴症)이 나고, 놀아도 심심하고, 배워도 답답하다면... 이 같은 영혼(靈魂)의 굶주림이 있을 때는 교회(敎會)를 찾아 간다. 교회에 가서 그 답답함이 씻겨지지 않음에도 또 교회(敎會)를 간다. 이런 사람들이 하늘에 계신 내 영혼(靈魂)의 아버지를 믿는 사람들이라 하겠다.사실 우리나라에서 글을 제일 많이 썼다.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유명(有名)하다.

 

그래서 세례를 받고 주님을 영접한 것이 큰 화제(話題)가 되었다. 하지만 그가 지성에서 영성으로 가는 문지방을 넘게 된 이야기를 읽으면서 참 많은 것을 깨달았다. 딸의 암(癌)과의 투병 생활(鬪病生活)과 자식들의 교육 문제, 외손자의 천국(天國)행, 그리고 실명(失明) 위기에서 육신의 아버지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고 한 그의 아픔 속에서 육신(肉身)의 아버지인 자신의 머릿속 지식(知識)은 건 불에 지나지 않았고, 손에 쥔 지폐(紙幣)는 가랑잎보다 못하다는 걸 느꼈다 했으니, 그 얼마나 가슴이 아팠으면 그렇게 표현(表現)을 했을까? 그리하여 그의 나이 70이 넘어서 그토록 하나님을 향하여 울부짖을 수밖에 없었던 실제 삶의 이야기는 정말 눈물겹다.

 

돈으로도, 지위(地位)로도, 인간의 힘으로는 해결(解決)하지 못하는 많은 문제들을 지상의 아버지는 함께 그저 아파해 줄 수밖에 없지만 천상(天上)의 아버지인 하나님은 잘 아시고 계신다. 그 아무리 부유(富有)해서 좋은 집과 좋은 음식이 넘치고,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많은 지식을 가졌다 하여 행복(幸福)하다 하지만 사람의 능력(能力)으로는 영원할 수 없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약(懦弱)함을 내려놓는다. 지성에서 영성으로 가는 문지방에 있다라고 한 그 문지방에서 한 발자국 더 물러난 자신(自身)을 그 문지방을 넘기 위하여 기도(祈禱)한다. 그 문지방을 넘어 문(門)을 굳게 닫고 오로지 앞만 보고, 주님만을 바라보고, 한발 작 한발 작 나아가길 원한다. 그 몇 번이나 눈물을 흘렸든가? 그때마다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하신 주님을 나도 느낀다. 그래서 감사한다. “지성에서 영성으로”를 통하여 편안한 느낌을 받는다. 

 

다른 데서는 느낄 수 없는 느낌이다. 할머니의 무릎에 앉아서 옛날이야기를 듣다 잠이 드는 것과 같이 누구도 모르는 편안함에 빠져든다. 그것이 어떤 이유에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편안함을 가져다주는 힘이 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던 그 시기에서부터 세례를 받기까지의 일상을 드러낸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묻는 질문(質問) 중에 하나가“어쩌다가 예수를 믿게 되었냐?”는 것이다. 그는 최근 70 평생 전혀 하지 않던 일을 하고 있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 첫째가 예수를 믿은 것이고, 그 두번째가 시집(詩集)을 내게 된 것이다. 이 두 가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이 자주 하는 질문이었다고 했다. 그래서 그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함이었다. 그 분깃 점인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과정(過程)이다. 곧 전에는 지성에 머물러 있었는데 이제 그 문지방을 넘어 영성으로 가는 길을 보여 주고 있다. 중간중간의 영적인 느낌을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그 아름다움은 정말로 황홀(恍惚)하다. 하나님의 이름을 그대로 찬양(讚揚)하고 있다. 그는 아직 완전히 문지방을 넘지 못했다 했지만 이미 넘어 앞으로 많이 나아간 듯하다.

 

우리의 신앙이 뜨거웠을 때 만나게 되는 다양(多樣)한 인물들 가운데 어떤 사람과 비슷한 타입이고, 또 그를 모범으로 삼아야 하는지 생각을 해 보곤 한다. 평생을 하나님과 동행(同行)했다는 창세기의‘에녹’이 너무나 멋있게 느껴져서 그런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나 하면, 가진 것도 아는 것도 부족했지만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 하나만은 누구 못지않았던‘베드로’를 닮고 싶어 했던 적도 있었다. 예수님과 비슷한 느낌의 어린 시절을 보냈던‘사무엘’이나, 차분한 기록으로 지적인 느낌을 주었던‘누가’, 의심이 많았지만 옆구리에 손을 넣어보고 난 후에는 그의 부활을 믿는 것은 물론이고 열정적인 전도를 했던‘도마’에게서 매력(魅力)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가장 극적이고, 인상적인 인물은 아무래도 사도‘바울’이었단다. 자신의 신념(信念)에 따라 가장 열심히 예수의 제자들을 박해했던, 오늘날로 따지면 학벌(學閥)이나 가문(家門) 등 세상 적으로 무엇 하나 빠질 것이 없었던 엘리트 중의 엘리트요, 상류층이었던 그가 기적적으로 회심(悔心)을 한 후 기독교(基督敎) 사의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하나가 된 것은 역사적인 사건(事件)이었다. 이 사건이야말로‘지성에서 영성으로’란 제목에 정말 잘 어울리는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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