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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 칼럼> 인생을 안다고 착각하지 말라

임병량 시니어 기자

임병량 | 기사입력 2024/08/13 [07:24]

<시니어 칼럼> 인생을 안다고 착각하지 말라

임병량 시니어 기자

임병량 | 입력 : 2024/08/13 [07:24]

 

▲ 임병량 기자     

 

 

 

 

  초등학교 1학년 손녀가 “할아버지는 잘난척한다”고 말한다. 가감 없이 잘 따라주고 소소한 기쁨과 행복만 담아준 귀여운 입술을 한참 동안 쳐다봤다. 어린이지만, 주관이 뚜렷하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버릇없다고 할까. 어느 쪽을 선택할지 앞뒤 감정이 뒤섞여 한참 동안 침묵을 지켰다. 손주와 내 생각이 착각의 톱니바퀴로 돌아가는 순간이다.

 

  잘난 척한다는 소리를 듣고 반성했다. 누구나 가깝게 지내려면 가르치기보다는 들어줘야 한다. 인성이 중요하다고 반복하면 싫었던 모양이다. 아무리 좋은 말도 두 번 이상하지 말자. 아랫사람이라고 여과 없이 함부로 대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가족 중에 손주들과 함께 있으면 행복감이 배로 늘어난 이유가 짝사랑 때문일까. 이젠 모두가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니고 있으니 만날 시간이 없다. 어쩌다 만나면 자기들끼리 모여 스마트 폰에 푹 빠져 함께 즐길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존경에서 외로움으로 바뀐다. 누구도 봐주지 않는 깊은 계곡에 흐르는 물줄기 신세다. 이게 시대 변화요, 세대 간의 갈등이다. 

 

  올해는 손주들에게 성경 필사와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주리라. 할아버지가 대접받던 시대는 지났다. 그들이 다가오기를 기다리면 더 외로울 뿐이다. 내 이야기는 될 수 있으면 하지 말자. 세대가 다른 사람이 모이면 자랑 아닌 자랑을 늘어놓는다. 그 뒤에는 눈총과 험담이 돌아온다는 점을 착각하지 마라. 대접받기보다는 그들의 관심사에 동참하고 공감하며 웃어주자. 무슨 일이나 부탁하듯 말하면 더 가까워진다. 일상의 역할은 말보다 행동과 실천이다. 성경은 지난 칠월에 필사를 마쳤다. 말씀과 영의 양식 중 ‘죄란 과녁에서 벗어난 일이다. 제 역할을 못 하고 엉뚱한 곳에 있으면 죄다. 욕심은 사망의 싹이다. 죽음은 한 번뿐이지만, 뒤에는 심판이 있다’를 가슴에 담았다. 

 

  퇴직 후에 성경 필사를 했다. 벌써 20여 년 전이다. 그때는 글자가 두 줄로 보이거나 안개 낀 거리처럼 희미하거나 어른거리지 않았다. 이번에는 자주 이런 현상 나타나서 불안했다. 안과에 찾아가니 근시와 백내장 초기, 노환 증상이란다. 안경 벗고 생활하면 더 좋아진다는 진단에 쾌재를 부르며 좋아했다. 우리 부부는 평소에도 눈이 나쁜 편이다. 아내와 함께 성경 필사를 하는 일이 무리였다. 아내는 오른쪽 눈 망막 점막, 시력 저하와 왜곡 증상이다. 

 

  망막 점막 제거 수술은 빠를수록 좋다고 한다. 희망을 주는 친절한 의사 K 박사를 만나 바로 다음 날 수술을 했다. 기도한 대로 응답해 주셨다. 결과는 좋았다. “나이가 들수록 몸에 이상 신호를 빨리 감지하는 게 건강관리다. 눈은 생명과 같다. 눈이 밝으면 아주 작은 물건까지 잘 볼 수 있고, 마음이 밝으면 보이지 않는 남의 마음 깊은 곳까지도 잘 살필 수 있다”고 팁을 준다. 

 

  몸은 늙었지만, 마음이 너그러워야 존경받는 세상이다. 나잇값을 못 하면 항상 외롭다. 외로움은 돈으로 해결할 수 없다. 외롭지 않으려면 능력을 갈고닦아야 한다. 어른이라고 여과 없이 함부로 말하면 관심 밖의 사람이 된다. 손주들은 나보다 스마트폰을 더 좋아한다. 이젠 그들과 함께 할 때가 지났으니 다른 궁리를 찾아야 한다. 나의 훈육 방식은 확실히 시대에 뒤떨어졌다. 요즘 젊은이 생각보다 우위라고 착각하지 마라. 비록 경험과 지혜는 부족하지만, 신지식은 월등히 앞선다. 인생의 크고 작은 문제로 걱정과 불안에 싸여 있을 때 통찰력과 안목을 심어 주는 일이 나의 역할이다.

 

  노년에 가장 좋은 친구는 배우자다.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미소 짓는 게 행복한 부부다. 내가 느낀 감정을 상대도 똑같이 느낄 거라고 쉽게 생각하는 일은 착각이다. 상대가 내 마음을 모르는 건 지극히 당연하다. 나이가 들면 나약해지면서 성격이 자기중심적이다. 복지관에는 아직도 가부장적인 사고로 아내를 힘들게 한 노인을 목격한다. ‘간 큰 남자 시리즈’에는 아내가 야단칠 때 말대답하거나 눈을 똑바로 뜨고 쳐다보는 남자가 간 큰 남자다. 남녀의 위치가 바뀐 시대 대표적인 시리즈다. 지금도 가부장적인 사고로 부부생활을 하고 있다면 큰 착각이다. 황혼이혼이 늘어난 이유다.

 

  지난 5월에는 87세 C 씨를 만나 인생 노트 사업에 멘토 역할을 했다. 노인이 죽음을 앞두고 자서전 만들기다. 영정사진을 찍고 누구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은 한 많은 사연을 용서와 화해로 삶을 정리하는 내용이다. C 씨는 7년 전부터 별거 생활을 하고 있다. 이유는 남편 의처증세가 갈수록 심해 생명의 위험에 느꼈기 때문이다. 자식 넷 중 막내딸이 미혼이라 함께 살기를 원했지만, 거절당했다면서 사연을 털어놨다. "자식들을 자신의 분신으로 여기고 키웠는데" 하면서 억울해했다. 때로는 서러워서 눈물만 나온다고 털어놨다. 잘 못 살아왔다고 후회하지만, 이젠 다 소용없는 일이라면서 긴 한숨을 내쉬었다. 남의 일이라 착각하지 말고 내 일이라 생각해 보니 정신이 번쩍 든다.

 

  노인의 경험이나 지혜가 더 이상 필요 없게 되었다. 세상을 더 살았다고 아는 체하면 시대의 착각이다. 노인은 적자를 늘리는 귀찮은 존재로 취급하는 부정적 시각이 많다. 스마트폰이 세상을 바꾸었다. 오히려 젊은이에게 묻고 배워야 할 일들이 늘어났다. 아무리 산전수전 다 겪은 경험 많은 노인이라도 빠르게 변한 세상을 살아가려면 새롭게 배워야 한다. 세월은 빠르다. 하늘에 흰 구름이 오늘따라 바람처럼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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