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꼰대 짓을 한다며 아내로부터 지청구를 들을 때가 있다. 내 생각이 고루하고 편협해서 시류에 맞지 않다는 말이다. 그동안 늙지 않고 젊음을 유지하고 있을 거라는 착각 속에 살았던 내가, 이제는 꼰대가 되어버린 것이다. 착각은 자유니 누굴 탓하랴.
꼰대는 늙은이, 기성세대, 선생, 아버지 등을 지칭하는 말이자 은어다. 의미가 확장되어 연령과 상관없이 권위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갑질을 일삼는 사람을 비하하는 별칭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자신의 경험을 일반화하여 다른 사람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하면 꼰대질이라고 말한다. 손아랫사람에게 가르치고 영향을 주려는 사람이라면 자신도 모르게 꼰대 소리를 듣는다. 하지만 반드시 나이를 먹은 늙은이만을 꼰대라고 부르지 않는다. 나이가 젊더라도 자기 생각이 아랫사람에게 영향을 미쳐 따라오기를 바란다면 이게 바로 꼰대다.
꼰대와 더불어 역 꼰대 현상이 대두되었다. 젊은 꼰대로 불리는 이 현상은 하등 꼰대와 다를 바 없지만. 나이가 젊다는 점이 다르다. 그들은 본인이 옳다고 믿고 고집한다. 자신보다 나이가 어리거나 지위가 낮은 사람에게 자기의 신념을 강요하는 모습은 영락없이 본인들이 극도로 꺼렸던 꼰대들의 모습을 그대로 닮았다. 이십 대는 십 대의 꼰대이고 삼십 대는 이십 대의 꼰대다. 한 마디로 나이와 지위에 의한 갑질이라 할 수 있다. 상사에게 불평불만을 토로하면서 본인은 더 꼰대질하는 사람, 기수 차이가 1~2년밖에 안 되는데 더 잔소리하는 선배 등 꼰대에 나이도 성별도 없다. ‘젊은 꼰대가 더 한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명예퇴직 직후인 14년 전에 있었던 나의 꼰대 사례다. 휴일임에도 평소보다 두 시간 일찍 일어났다. 늦잠에서 깨어난 두 아들에게 마음먹고 훈계를 시작했다. “아버지는 일찍 일어나 조깅을 하고, 샤워를 마쳤다. 조간신문도 다 훑었다. 젊은 나이에 일주일에 한두 차례는 맑은 공기를 마시도록 습관을 바꿔라.” 끄덕끄덕 화답하는 애들에게 그 정도에서 그쳤어야 했다. 발동기 달린 스피커가 멈출 리 없었다. “그렇게 게을러서야 불뚝해진 배를 어떻게 관리할 것이냐? 또 치아 관리도 아주 중요하다. 당장 치과를 방문해라. 치과는 강남 논현동에 있는 「S 플란트병원」이 최고다. 임플란트 실적이 6만 건으로 치과계 국내 최고의 병원이다.” 밑도 끝도 없는 잔소리는 어느덧 50년 전 주경야독 시절 고생담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작은 아들이 슬며시 비운 자리에는 아내가 앉아 있었다. “지긋지긋한 옛날 타령이 또 시작되는군요! 그렇게 통쾌하세요?” 예전에 없었던 큰아들의 반박이 뒤따랐다. 큰아들의 단호한 면박이 있기 전까지는 그게 꼰대 짓인 줄 몰랐다.
요즘 경로석에 공짜로 타는 노인층이 많아서 적자라고 야단이다. 노인 인구가 갈수록 증가하니 노인 혜택에 대한 반감도 덩달아 늘어나고 있다. 최근 경로석에서 벌어진 일이다. 경로석에 여학생이 앉아 있었다. 한 노인이 다가서더니 “학생, 여기는 경로석이야.” “할아버지, 저는 돈 내고 탔는데요.” “여기는 돈 안 내고 타는 자리야!.” 유머에서나 있을법한 상황이 전철 안에서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 경로석 에피소드가 온종일 우울하게 느껴지는 건 나이탓일까?
몇 년 전 모 신문에 실린 J 작가의「애비는 죽어서도 꼰대다」라는 수필을 읽은 적이 있다. 기죽을 필요 없다는 외침이어서 공감했다. ‘아들아, 친구들이 애비를 꼰대라고 비웃어도 화내거나 슬퍼하지 마라. 그래 애비는 꼰대다. 책보를 허리에 둘러매고 장대같이 쏟아지는 빗속을 총알처럼 달렸다. 밤이면 등잔불 밑에서 눈을 비벼가며 책을 봤다. 노력만 가지고는 안 되더라. 초등학교 졸업장 하나 없다는 게 애비의 평생 한이었다. 그래도 글씨를 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이냐···. 부디 캥거루족은 되지 마라. 어미 캥거루도 언젠가는 죽고 만다. 애비는 죽어서도 꼰대다.’ 어느 꼰대 어른의 용기 있는 고백이었고, 어버이날 자식들에게 보내는 당당한 외침이었다. 때맞추어 지공거사 소식이 외신을 탔다.
‘지공거사(地空居士)’는 지하철을 공짜로 타고 다니는 노인을 일컫는 말이다. 지난해 9월, 미국 『뉴욕타임스』는 한국의 지공거사를 자세히 조명했다. NYT는 「나이 든 지하철 탑승자들이 여행에서 기쁨을 찾는다」라는 제목의 서울발 기사를 통해 지공거사의 일상을 담아냈다. 8월 어느 날 여든다섯 살 L 씨는 집 근처 4호선 수유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한 차례 환승해 1시간 만에 1호선 종점인 소요산역에 도착했다. L 씨는 역 근처를 거닐다 그늘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다시 남쪽으로 향하는 지하철에 올라탔다. L 씨는 “시간을 보내는데 공짜 지하철 타기만큼 좋은 것이 없다”며 “집에 있으면 지루하고 누워만 있게 된다.”라고 전했다. 지공거사에게 지하철은 특별한 교통수단이다. 지하철은 무더운 여름을 시원하게 보낼 수 있는 피서지이기도 하고 가고 싶은 곳에 무료로 다닐 수 있는 이동 수단이기도 하다. 무료 지하철은 ‘오아시스’이며 또 다른 이에겐 ‘휴식처’ 같은 곳이다. 지공거사들은 나름 민폐를 끼치지 않기 위한 에티켓을 가지고 있다고도 했다. 사람들이 몰리는 출·퇴근 시간대는 피한다거나, 젊은 사람들이 앉아 있으면 자리 양보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그 앞에 서 있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공거사의 품격이 드러나는 이야기에 자긍심을 느낀다.
사람이 나이를 먹을수록 칭찬과 긍정이 늘어가면 어른이 되고, 비난과 부정이 늘어가면 꼰대가 된다고 한다. 정작 꼰대들은 자신이 꼰대라는 말을 듣기 싫어하지만, 선생님이나 어르신의 호칭도 떨떠름하다. 더욱이 노인으로 불리는 것도 내켜하지 않는다. 오늘날 젊은이들은 나이 든 사람을 ‘꼰대 어른’이라고 부른다. 그렇지만 오직 내 말만 옳다고 고집부리는 꼰대 어른과는 달리, 이해하고 용서하고 나누고 베풀 줄 아는 어른도 있다. ‘나 때는···.’ 하며 과거를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카페라테처럼 부드러운 그런 ‘라테 어른’ 말이다. 이런 호칭은 나이 든 이들의 로망이다.
꼰대와 역 꼰대가 공존하는 세상이다. 어른들이 먼저 권위적으로나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젊은이들을 이해하는 쪽으로 노력해 보면 어떨까. 젊은이들도 나이 든 세대를 꼰대라고 몰아세우지 말고 그분들의 삶을 이해하고 좋은 점은 받아들이려고 노력한다면 더 살맛나는 세상이 도래하지 않을 까 싶다. 인생에 정답은 없다. 쌍방이 조금씩 뒤로 물러서서 상대방을 이해하고 존중해 주는 것이 최선이 아닐까? <저작권자 ⓒ 경기실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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