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를 갔다온 남아들은 저마다 길고 짧은 얘깃거리 하나씩은 가슴에 담고 있다. 그중에는 기억하기 싫은 것도 있고, 아련한 그리움을 안겨주는 얘기도 있다. 제대한 지 46년이 지났지만 생각하면 미소가 절로 나오는 일화가 있다. 독특한 성격의 소대장을 만나 겪었던 ‘라면수프 사건’ 얘기다.
1988년 가을 주택은행 마산지점으로 대리 승진 발령을 받았다. 연고지가 아닌 데도 지방으로 발령을 받았지만 승진되어 가니 기분은 나쁘진 않았다. 아마 대학교를 진주에서 나온 점이 반영되지 않았나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9년 전 같은 부대에서 복무했던 전우 생각이 났다. 그 당시 우리 소대엔 마산 출신이 3명이나 있었다. 작은 체구의 여ㅇㅇ 선임은 내가 휴가를 갈 때면 정성스레 군복을 다려주던 분이었다. 까무잡잡한 얼굴의 허 ㅇㅇ 후임은 개인택시를 운전하다 입대했는데 매사에 적극적인 모범사병이었다. 허 후임과 동기인 정ㅇㅇ 후임은 교환대 번호판을 못 외어 얼차려를 많이 받았던 친구였다. 개인택시조합에 전화를 했다. 다행히 허 후임의 연락처를 알 수 있었다. 그는 개인택시 운전을 하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군 제대 후 9년 만에 한때 희로애락을 같이 했던 옛 전우를 만나는 기쁨을 누리게 됐다.
여 선임이 오토바이를 몰고 왔다. 군대에는 유별난 성격의 소유자도 많지만, 인정이 넘치는 사람도 있다. 그는 항상 부지런하고, 후임을 잘 챙겨주던 분으로 기억에 남아있었다. 옛 전우가 사회인이 되어 식당에서 반갑게 만났다. 세월이 제법 흘렀어도 건강한 모습이다. 우린 군대 얘기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러던 중에 소대장 얘기가 나왔다. 그분은 잊을 수 없는 독특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점호가 맘에 들지 않거나 본인 기분이 저기압 일 땐 가차 없이 얼차려를 시켰다. 선임이라고 봐주는 일이 없었다. 그래서 전우들 사이엔 ‘독사 소대장’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점호시간은 항상 초긴장 상태였다. 점호 준비 상태가 맘에 들지 않을 때면 침상에 전 소대원을 엎드려뻗쳐 시켜 놓고, 졸병인 나에게 노래를 시켰다. 노래하는 나도, 얼차려 받는 선임병도 죽을 맛이었다.
소대장을 상기할 때 빼 놓을 수 없는 얘깃거리 중의 하나가 점심 식사 에 얽힌 일화다. 그 당시 식사 당번은 주번사관의 식사를 준비하고 선임병 식기까지 닦아야 했다. 그러다 보니 오후 교육 시간에 맞추려면 늘 시간에 쫓기기 일쑤였다. 가장 흔한 된장국이 나오는 날은 그나마 식기 닦기가 수월했다. 어쩌다가 고깃국이 나오는 날은 고기는 보이지 않고 기름만 둥둥 떠다녔다. 그럴 때면 병사들은 하나같이 “고기가 헤엄치고 갔다”고 투덜거렸다. 가장 힘든 날은 겨울철 양고기 나오는 날 온수가 나오지 않을 때다. 이때는 찬물에 기름 묻은 식기를 닦느라 애를 먹는다. 그날은 점심 메뉴가 라면이었다. 라면은 스팀으로 쪄서 나왔다. 뜨거운 국물에 스프와 계란, 라면을 넣어 먹는다. 문제는 식사 후에 벌어졌다.
칠월 한 여름 햇볕이 막사와 연병장을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 소대원들은 식사를 마치고 내무반에서 오후 교육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그 때 갑자기 “전 소대원 개인 군장에 판초우의를 지참하고 연병장에 집합하라”는 명령이 하달되었다. 우리는 영문도 모른 채 허겁지겁 집합했다. 오늘 또 무슨 사달이 난 것인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벌써 땀이 온몸에 후줄근하다. 잠시 후에 소대장이 연단에 섰다. “모두 판초우이를 입어라”고 했다. 철모를 쓰고 그 위에 판초우의를 걸쳐 입었다. “별도 지시사항이 있을 때까지 오리걸음으로 연병장을 돌아라.” 고 명령했다. 몇 발자욱도 못가서 비지땀이 눈과 목덜미로 비 오듯이 흘러내렸다. 한 바퀴쯤 돌아 모두 기진맥진 할 무렵에야 오리걸음을 중단시켰다. 지금 생각하면 탈진한 사람이 없었다는 게 이상했다.
이윽고 독사 소대장이 연단에 서서 입을 열었다. “야, 이 새끼들아! 소대장의 점심 라면에 수프를 빠뜨려? 이것 하나만 봐도 너희들 요사이 군기가 빠졌다는 증거다. 오늘은 이 정도로 해두지만, 앞으로 좀 더 지켜보겠다.” 며 화가 잔뜩 난 얼굴로 연단을 내려갔다. 그 말을 듣자 우리는 모두 어안이 벙벙했다. ‘무슨 큰 일이 생겼구나.’ 하며 잔뜩 긴장하고 얼차려를 받았는데, 그 깐 라면수프 하나 때문에 더운 여름날 이 난리를 피우다니 ···. 모두 한동안 멍하니 말이 없었다. 선임들은 “에이 더러워서 군대 생활 못해 먹겠네. 수프가 없으면 가져오라고 시키면 될 일을···.” 하면서 투덜거렸다. 오후 교육 일과에 쫓기다 보니 식사 당번이 그만 소대장의 라면 수프 챙기는 걸 깜박해서 생긴 일이었다. 그 일이 있은 후 소대원들의 사기는 땅에 떨어졌고, 한동안 내무반의 분위기는 말이 아니었다. 내무반엔 누구 하나 삐딱하면 큰 일이 생길 것만 같은 냉기가 감돌았다. 얼마 후 독사 소대장은 다른 부대로 전출을 갔다. 소대원의 얼굴에 안도의 기색이 역력했다. 내무반엔 갑자기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군대에서 지휘자의 중요성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지휘자라고 다 같은 지휘자가 아니다. 상황에 맞는 올바른 판단을 하는 지휘자는 부하를 살릴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지휘자는 부대 전체를 사지로 몰수도 있기 때문이다. 채찍과 당근을 잘 활용하여 소대원의 전투 능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려야한다. 당시에는 소대장의 명령이 불합리하고 억울하다고 생각했다. 재수 없게 괴팍한 소대장을 만나 고생만 했다고 원망도 많이 했다. 하지만 그 때의 얘기를 하면서 ‘좀 더 강한 군인을 만들기 위한 소대장만의 훈련 방식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편한 일만 있으면 어찌 군대라고 할 수 있겠는가. 여 선임의 말처럼 “어쩌면 그런 과정을 거쳤기에 오늘 이렇게 만나 웃으며 추억을 되새길 수 있는 게 아닐까.”라고 한말이 떠오른다.
그 후 1년 만에 서울로 발령이 났다. 뒤돌아볼 새도 없이 앞으로 달리다 보니 은퇴한 지 벌써 9년이 지났다. 그때 만났던 전우들도 기억에서 멀어졌다. 무더운 여름 오후 ‘라면수프 사건’을 생각하면 저절로 미소가 떠오른다. 이제 아득한 추억으로 남은 독사 소대장과 여름날 판초우의 쓰고 오리걸음 하던 전우들은 무얼하고 있을까? <저작권자 ⓒ 경기실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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