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의 파이돈”(; 2천 4백여 년 전 소크라테스의 죽음에 전날 밤 심미아스, 케베슨 등 제자들과의 대화에 기록(記錄)물)에서 소크라테스와 그의 제자인 플라톤은 한 인간 영혼의 존재를 믿었다. 실제로 소크라테스는 이 같은 믿음으로 인해서 죽음 앞에 담담했다. 그리고 이를 진정한 인간 해방(解放)의 길로 여겼다. 그래서 인간의 죽음은 그에게 자유(自由)로의 한 위대한 전환점이 된 것 이다.
여기 소크라테스의 영혼 불멸(不滅)성에 관한 주장을 엮어 만든 접근(接近)법에 대해서 살펴 보자.그 첫 번째, 형상(形狀)은 영원하며 비 물질적(非 物質的) 존재다. 두 번째, 이성(理性)은 형상(形狀)을 이해할 수 있다. 세 번째, 영원하며 비물질적인 존재만이 영원하며 비물질적인 존재를 이해할 수 있다. 네 번째, 그러므로 이성은 영원하며 비물질적인 존재이다. 다섯 번째, 이성이 비물질적인 존재라는 것은 곧 영혼이라는 의미다. 여섯 번째, 그러므로 영혼(靈魂)은 영원(永遠)히 존재(存在)한다는 것이다.
여기 형상(形狀) 이란? 완벽(完璧)한 존재라는 의미(意味)를 내포한다. 이를테면 사람은 완벽한 원을 상상할 수 있다. 그러나 세상에 완벽한 원을 가진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은 완전한 정의(定義)를 상상할 수 있다. 그러나 세상에 완전한 정의는 없다. 완벽한 존재는 형상 그리고 그것을 상상하는 사람을 이성이라고 조건을 붙여보면, 이런 이성과 형상을 가진 사람의 영혼이라고 확장해 봤을 때, 영혼은 영원히 존재한다는 결과로 귀결(歸結)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허점(虛點)이 많은 주장이며, 아직 결론이 지어지지 않은 과정의 연속이다.
그러나 이런 믿음을 가진 소크라테스에게 죽음이란? 과연 어떤 의미였을지 생각 해 본다. 자! 우리가 한번‘소크라테스’가 되어 보자! 우리가 죽음 이후에, 우리의 육체를 떠나 영혼의 상태로 완전한 존재들이 있는 세계로 인도받게 된다. 거기에서 우리는 또 다른 삶을 살게 된다. 그렇다면 만약, 이 모든 생각을 사실로 받아들이게 된다면, 우리의 지금의 삶은 어떨까? 이러한 사고(思考)는 현실에서 선순환(善循環)을 부를까, 악순환(惡循環)의 시작이 될까?
인간의‘목숨’이란 하나다. 현재까지의 정설(定說)이다. 이것이 귀하기 때문에 우리는 삶을 소중(所重)히 여기고 소중하다고 말한다. 한 번뿐이니까 말이다. 그러나 이것이 하나가 아니라면. 죽음 이후에 다른 세계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면. 지금의 최우선적 가치에 올라서 있는 삶의 가치는 어떻게 될까? 보다 쉬워 지게 혹은 더 막 다뤄지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죽음이 두렵지 않아, 보다 더 다양한 도전에 나서보면, 글쎄! 그 모든 것들이 선(善)하다고는 말을 할 수 없겠다. 영혼의 불멸성에 대해 소크라테스의 주장과 플라톤의 정리를 밝히며 이 안에 숨겨져 있는 빈틈을 찾아 조금 벌려주자, 판단(判斷)은 항상 각자(各自)에게 맡겨져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소중(所重)함을 이어가고 싶다. 지금의 이 순간(瞬間)을 말이다. 거듭 묻고 싶다. 과연 우리는 죽음을 잘 준비(準備)하고 있는가?
죽음이란? 우리의 의식(意識)이 다른 차원에서 존재하게 되는 과정일 뿐이며, 사후(死後) 세계와 소통(疏通)하는 것도 가능 함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죽음이 더는 두렵지 않은 세상 그러니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진다면 우리 삶에는 상상할 수 없는 변화(變化)가 일어난다는 것을, 그리고 편견(偏見) 없이 바라보는 죽음 이후의 세계를 바라보자, 과학(科學)과 사후(死後) 세계(世界)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우리가 한 번 생각(生覺)해 보되 참다운 웰다잉의 삶이라 할 수 있는 우리 사회의 지성인 중 지성인인 고 이어령 씨의 이성과 지성 등과 같은 삶이다. 우리의 삶을 그리고 영혼(靈魂)은 영원히 죽지 않는가? 란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러한 삶을 생각해 보고 싶다. 오늘의 삶이다. 오늘은 내 남은 생애의 첫날이란 생각의 삶이다. Today is the first day of the rest of your life. 그러니까 그대의 남은 생애의 첫날이다. 그래서 평소에 늘 "오늘이 마지막인 듯이 살게 하소서 !" 하던 기도를 "오늘이 내 남은 생애의 첫날임을 기억하며 살게 하소서!"라고 바꾸어서 기도하게 되었다.
'마지막'이라는 말은 왠지 슬픔을 느끼게 하지만, "첫날"이라는 말에는 설렘과 기쁨을 주는 생명성과 긍정적인 뜻이 담겨 있어 좋다. '나에게 주어진 새로운 시간, 새로운 기회를 잘 살리도록 노력해 보자. 해야 할 일을 적당히 미루고 싶거나 게으름을 부리고 싶을 적에, 나 자신에게 충고한다. '한 번 간 시간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정신을 차리고 최선을 다하자. 성실하고 겸손하게!' 문득문득 다시 생각나는 말, 나를 다시 움직이게 하고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말, 삶이 힘들 때 충전시켜 주는 약이 되는 말! 오늘은 내 남은 생애의 첫날이다. 이 말이 있어 나는 행복하다. 이 말을 계속 되새김하다 보니 이런 기도가 절로 나온다. "오늘도 싱싱한 희망의 첫 마음으로, 내 남은 생의 첫날을 살게 하소서. 새로운 감탄과 경이로움을 향해 나의 삶이 거듭나게 하소서." 감사합니다. <저작권자 ⓒ 경기실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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