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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 칼럼> 노년기 글쓰기로 나를 찾다

임병량 시니어 기자

임병량 | 기사입력 2024/01/14 [12:04]

<시니어 칼럼> 노년기 글쓰기로 나를 찾다

임병량 시니어 기자

임병량 | 입력 : 2024/01/14 [12:04]

 

▲ 임병량 기자     

 

 

 

  인생은 언젠가 마지막이 온다. 모임에 나가면 나이와 관계없이 먼저 간 친구들의 이야기가 화두다. 한마디 말도 없이 불의의 사고로 떠난 삶은 본인이나 가족, 모두에게 안타까움으로 전달될 뿐이다. 아무리 백세시대라고 하지만,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게 건강이다. 칠십을 훌쩍 넘기고 나서야 나를 찾기에 나섰다.

 

나를 찾는다는 일이 쉽지 않다. 지금도 내 마음 나도 모른다. 지난 학창 시절에는 공부 잘하는 학생, 직장생활은 관계를 잘한 동료, 퇴직 후에는 대중 앞에서 강의 잘하는 사람이 부러웠다. 이런 삶을 살기 위해 기준도 없이 앞만 보고 달려왔다. 안개처럼 흐릿한 미래를 뚜렷하게 만들겠다고 자신을 혹사해서 미안하기도 했지만, 감사한 일도 많았다. 노후에 접어드니 글 잘 쓰는 사람이 다른 어떤 재능을 가진 사람보다 선망의 대상이 된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글쓰기는 추억을 정리하고 내면을 표현해서 자신이 솔직해지는 길이다. 포장과 가면을 벗어버리고 나를 찾아가는 여행이다. 존재감을 알리고 경험과 지식, 삶의 지혜도 공유할 수 있다. 추억이 되살아나고 마음이 풍요롭다. 억압된 감정과 가슴의 응어리도 풀어준다. 인생이 차분하게 정리되면서 마음조차 가벼워진다. 돈 안 드리고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게 글쓰기의 장점이다.

 

  글쓰기는 여전히 어렵다. 기사는 단편적이고 규격화된 틀 속의 글이고, 객관적인 사실을 전달하는 기능이다. 이젠 틀 속에서 벗어나 진실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자연스러운 창작물을 생산하고 싶다. 내 생각과 느낌을 기록하고 싶다. 나를 찾아가는 길을 걷고 싶다. 사고의 영역을 넓혀 꿈과 공감의 글로 희망을 주는 노후생활이 바로 글쓰기라고 생각한다. 오늘도 글감을 찾아 나선 곳이 현충원이다.

 

  억압된 감정을 풀지 못하고 이슬처럼 사라진 애국자들이 현충원에 안장되어 있다. 그분들에게 많은 빚을 지고 살면서도 자주 찾아뵙지 못해 항상 죄송한 마음이다. 모처럼 그곳에 가야 할 일을 만들었다. 올해 극장가에서 가장 인기를 누리고 있는 영화 <서울의봄>이다. 그 주인공들이 이곳에 잠들어서 세상에 알려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모든 일정을 뒤로하고 투어에 참여했다. 개봉된 지 보름도 안 되어 칠백만 관객 수를 돌파할 정도로 인기를 누린 히트상품이다.

 

  현충원 투어는 오마이뉴스 김 기자가 12.12쿠데타에 맞서 싸웠던 용사들을 적극적으로 알리기 위한 행사다. “공익목적 무료 행사 ‘참 군인’을 찾아갑니다. 총칼 앞에 무참히 쓰러진 그들의 영혼을 뵙기 위해 12월 9일 오전 10시 30분, 현충원 만남의 광장에서 만납시다. 군사 반란에 맞춰 급히 날짜를 정했습니다.” 간단한 몇 마디 글은 인터넷의 전파를 타고 몇 시간 만에 백 명으로 마감했다. 인터넷 속도는 순간에 전달된다. 거기에다 감동의 글이 실리면 마음조차 하나로 단합된 세상에 살고 있다.

 

  전국에서 모인 사람들은 대부분 직장인이고 몇 명은 중고등학생도 포함되었다. 포항과 광주, 부산에서도 참가했다. 김 기자는 쿠데타와 싸웠던 정병주 장군, 대전현충원에 안장된 장태완 수도 경비 사령관, 김진기 헌병감 등의 업적을 설명했다. 정선엽 병장의 묘에서는 “저도 육군 장교 출신입니다. 정 병장은 제대 3개월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장교가 아닌 병들이 무엇을 알겠습니까? 상관이 지시한 내용을 끝까지 지켰을 뿐입니다.

 

  “김오랑 중령과 정 병장은 사망 일자가 같습니다”라고 말하면서 목이 메 울컥했다. “40여 년이 지난 후에야 순직에서 전사로 바뀔 수 있었던 것은 역사의 진보입니다.”라고 설명하면서 묘비를 어루만지며 참았던 눈물을 보였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50여만 평의 넓은 묘역 지에 인적은 없고 칼바람 소리만 요란하다. 가끔 새때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까마귀도 그 내용을 아는지 공중에서 떼를 지어 날아든다.

 

  옆에 있는 동료가 메모지 한 장만 남겼어도 40여 년의 긴 터널이 이어지지 않았으리라. 아쉬움이 가슴을 파고든다. 생각이 뛰어나고 아무리 말을 잘해도 세월이 가면 잊어버리지만, 글은 영원히 남아서 후대까지 기억한다. 적는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말이 있다. 세계를 지배하고 엄청난 대업을 이루었던 몽골이지만, 후세들의 초라한 삶의 이유 중 하나가 기록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인생은 바람처럼 지나가 버린다. 한평생을 살고도 아무런 자취와 흔적도 없다면 슬픈 일이다. 남겨 놓은 글은 후손들에게 기억된다. 글쓰기는 존재감이다.

 

  글쓰기는 나를 탐색하는 출발점이다. 내가 누구이며 무엇을 원하고 하고 싶은 일이 어떤 것인지 발견할 수 있다. 포장된 마음이 풀어져야 소통이 된다. 마음이 청결하고 역지사지와 이타심이 발동한다. 세포들은 모여서 주인의 고급스러운 생각에 힘을 모아준다. 미래를 풍요롭게 만들어 줄 적합한 도구가 글이다. 세상에 그릇된 기준에 현혹되지 않고 자신만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힘을 준다. 치유되지 않은 감정을 녹여준다. 일과 삶의 균형을 잡아주고 일상에 활기를 불어넣어 내가 변화된다. 안개처럼 흐릿한 미래를 뚜렷하게 하는 효과도 있다. 글쓰기는 어느 사회에서나 핵심이다. 이 게 글쓰기 이유다.

 

  노인은 자신만 아는 사람이고 긍정보다 부정의 요소가 많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글쓰기는 사회를 바꾸는 힘이고 유산이다. 노년의 편견이 사라지면 노년층의 문화와 삶의 풍경도 달라질 것이다. 늦은 나이지만 글쓰기 시작하길 잘했다. 사회는 글. 쓰는 사람을 원한다. 책을 읽는 것은 다른 사람을 만나는 일이지만, 글을 쓰는 일은 나를 만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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