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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충원에서 독립유공자 만나다

임병량 | 기사입력 2024/01/06 [20:08]

현충원에서 독립유공자 만나다

임병량 | 입력 : 2024/01/06 [20:08]

 

 

 

 

 






  오마이 뉴스 김 기자는 한파가 염려되니 핫팩과 방한모자, 방한용품이 필수 준비물이라고 공지 사항으로 올렸다. 갑진년 정월 둘째 토요일, 추운 겨울 날씨라고 예고했지만, 의외로 하늘은 푸르고 포근했다. 현충원 투어에 함께한 일행들은 독립운동가를 만나는 날, 하늘이 도와준 축복이라고 이구동성으로 한목소리를 냈다.

 

  전국에서 200여 명이 대전현충원 현충문에 모였다. 신청자는 이보다 훨씬 많았지만, 개인 사정으로 함께할 수 없었다는 주최 측의 이야기다. 100만여 평에는 국가와 사회를 위해 희생한 순국선열과 호국 영령 14만여 위가 영면해 계신다. 비석 옆에는 태극기와 조화가 질서를 지키며 방문객을 맞이하지만, 일행을 제외하고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곳은 현충일만 북적거릴 것이 아니라 평소에도 많은 사람이 찾아와서 그들의 영혼을 위로하고 애국의 삶을 함께 공유했으면 좋겠다.

 

  해설자 김종훈은 《임정로드 4,000km》 저자이며 40대 기자다. 임정로드란 1919년 4월 11일 탄생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중국 상하이를 시작으로, 광복을 맞이한 충칭까지 이어갔던 26년 발자취를 일컫는 말이다. 임시정부의 임정과 길을 뜻하는 로드(road)를 합쳐 임정로드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그는 20박 21일 동안 중국 현지 취재로 출간된 이래 애국지사와 친일파의 무덤을 찾아다니며 6년째 세상에 알리고 있다. 4 년 전에는 3·1운동 100주년 우수사업에 뽑혀 청와대 초청까지 받았으니, 그의 애국심에 부끄러움이 온몸을 휘감았다.  

 

  현충원 투어는 참군인의 현실을 알리기 위한 무료 재능기부다. 비영리 공익 목적으로 애국지사와 순국선열, 반란에 맞선 “이번 대전현충원 투어가 35번째입니다. 지난해 11월 22일에 개봉한 <서울의봄> 영화를 보고 참 군인과 독립유공자를 적극적으로 알려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이 영화는 12월 12일 보안사령관 전두광이 반란을 일으키고 조직을 동원하여 최전선 전방부대까지 서울로 불러들인다. 반란군과 맞선 수도 경비 사령관 이태신을 비롯한 진압군 사이 목숨을 건 두 세력의 팽팽한 대립과 긴장의 영화는 두 달이 채 되지 않았지만, 관람객 천이백만 명이 넘을 정도로 인기가 높은 이유가 바로 참 군인을 알기 위해서다.

 

  영화에 힘입어 현충원 투어가 현장감을 뒷받침했다. 지난 동작동 투어가 참군인 위주였다면, 이곳은 독립유공자다. 첫 번째 방문은 독립유공자 2 묘역에 잠든 권애라 애국지사다. “남편 김시현과 평생 독립운동을 함께했으나 남편 묘지는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유는 이승만 저격 미수사건으로 부인과 함께 잠들지 못했습니다. 그의 무덤을 찾기 위해 휴가를 내고 고향 안동에서 그의 무덤을 찾아 처음으로 세상에 알렸습니다”라고 말하자 일행들은 함성과 큰 박수로 응원했다.

 

  다음으로 김인 과 곽낙원의 묘소를 참배했다. 백범 김구의 어머니가 곽낙원이고, 그의 장남이 김인 애국지사다. 곽낙원 애국지사는 독립운동가들을 정신적 물질적으로 뒷바라지하면서 국내 및 중국에서 조국광복을 위한 항일투쟁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피눈물 나는 지원을 하면서 생활했다. 김인 애국지사는 일본의 중요관공서 폭파 계획을 지휘 감독했다. 또 일본 전투 군함 이즈모를 폭파, 격침할 준비를 하다 정보가 누설돼 실패했지만, 한국광복 전선 청년공작대에 입대해서 한국국민당 청년단의 기관지 <청년호성>을 발간해서 독립사상을 깊이 심어줬다.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하고 친일을 하면 3대가 흥한 세상에 살아간다’라는 말처럼 애국지사들은 정체를 숨기고 살아야 했다. 항일 독립운동에 생을 바쳤던 그들은 힘겹게 투쟁을 이어갔지만, 영광을 잇지 못했다. 영광은 고사하고 제대로 평가조차 받지 못했다. 그들은 억울하게 살다가 안타깝게 죽어갔다. 아무도 관심 두지 않고 외면한 탓에 친일 세력은 여전히 날뛰며 기득권을 유지했다. 잘못된 매듭은 풀어야 한다. 현장에서 직접 보고 느낀 것을 알려야 한다. 많은 사람이 우리의 뿌리를 찾아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아 가야 한다고 호소했다.

 

  수원에서 왔다는 60대 부부는 권애라와 그의 남편 김시현, 곽낙원과 김인 애국지사 이름을 처음 들었다면서 부끄러워했다. 현충원은 누구나 가봐야 할 역사가 담긴 체험학습장이다. 입시에만 매달리는 학생들에게 국가를 위해 희생하신 순국선열과 호국 영령이 영면해 계신 현충원 학습은 어떤 공부보다도 우선 되어야 한다. 사회가 양극으로 나눠지고 있는 일은 바로 나라 사랑이란 공동분모가 희미해진 탓일까? 세월이 갈수록 애국이란 단어까지 잊힐까 두렵다.

 

  애국지사 3 묘역에 안장된 홍범도 장군은 나라 독립을 위해 온몸을 바친 대표적인 독립유공자요, 자랑스러운 첫 번째 참 군인이라고 했다. 사후 78년, 봉오동 전투 101년 만에 고향 땅에 왔지만, 친일파, 매국 행위자, 독립운동 배반자와 함께 홍장군이 묻혔다는 사실이 마음 아프다면서, 현충원 재정비 사업이 시급히 추진되어야 한다고 호소했다. 독립운동가들이 이런 현실을 알면 편히 잠드셨겠냐면서 목이 메어 말을 잊지 못하고 한참 동안 하늘만 쳐다봤다.

 

  이번 행사에 일본 공영방송인 NHK가 취재를 나와 인터뷰한 내용이다. 어디서 이 많은 사람이 온 것이냐? 영화 <서울의 봄>을 관람한 뒤 SNS에 올린 공지 보고 찾아왔다. 반란에 맞섰던 참군인이 어디에 잠들었는지, 어떻게 싸웠는지 제대로 알고 술 한잔이라도 직접 올리기 위해 모였다고 기자가 전했다. 일제 강점기 시절, 나라를 되찾고자 혹독히 고생한 독립운동 이야기, 감옥살이와 쫓겨 다니기, 헐벗고 굶주리기를 반복한 이들의 고된 삶이 오늘날 우리나라가 존재할 수 있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일행들은 오후 4시까지 다섯 시간 동안 백여만 평의 넓은 곳에 핵심 인물을 찾아다니며 독립운동가의 삶을 재 조명하며 감동의 씨앗을 심었다. 친일파와 독립투사, 참군인과 반란군이 함께 잠든 부당한 현실이 바뀔 때까지 투어는 계속 이어진다고 공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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