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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 칼럼>인생을 안다고 착각하지 말라


임병량 시니어 기자

장상옥 | 기사입력 2024/11/05 [21:22]

<시니어 칼럼>인생을 안다고 착각하지 말라


임병량 시니어 기자

장상옥 | 입력 : 2024/11/05 [21:22]

 

▲ 임병량 기자   

 

  초등학교 1학년 손녀가 “할아버지는 잘난척한다”고 말한다. 가감 없이 잘 따라주고 소소한 기쁨과 행복만 담아준 귀여운 손녀를 한참 동안 쳐다봤다. 어린이지만, 주관이 뚜렷하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버릇없다고 해야 할까. 어느 쪽을 선택할지 앞뒤 감정이 뒤섞여 한참 동안 침묵을 지켰다. 손주와 내 생각이 착각의 톱니바퀴로 돌아가는 순간이다.

 

  잘난 척한다는 소리를 듣고 반성했다. 누구나 가깝게 지내려면 가르치기보다는 들어줘야 한다. 인성이 중요하다고 반복해서 말해줬던 게 싫었던 모양이다. 아무리 좋은 말도 두 번 이상하지 말자. 아랫사람이라고 함부로 대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가족 중에 손주들과 함께 있으면 행복감이 배로 늘어난 이유가 짝사랑 때문일까. 이젠 모두가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니고 있으니 만날 시간도 없다. 어쩌다 만나면 자기들끼리 모여 스마트 폰에 푹 빠져 지낸다. 할아버지라는 이름으로 사는 난, 누구도 봐주지 않는 깊은 계곡에 흐르는 물과 같은 신세다. 이게 시대 변화요, 세대 간의 견해차이다.

 

  올해는 손주들에게 성경 필사와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주리라. 할아버지가 대접받던 시대는 지났다. 손주들이 다가오기를 기다리면 더 외로울 뿐이다. 내 이야기는 될 수 있으면 하지 말자. 세대가 다른 사람이 모이면 자랑 아닌 자랑을 늘어놓는다. 그 뒤에는 눈총과 험담이 돌아온다는 점을 잊지 말자. 어른 노릇보다는 그들의 관심사에 동참하고 공감하며 웃어주자. 무슨 일이나 부탁하듯 말하면 더 가까워지리라. 일상의 역할은 말보다 실천이다. 성경은 지난 칠월에 필사를 마쳤다. 말씀과 영의 양식 중 ‘죄란 과녁에서 벗어난 일이다. 제 역할을 못 하고 엉뚱한 곳에 있으면 죄다. 욕심은 사망의 싹이다. 죽음은 한 번뿐이지만, 뒤에는 심판이 있다’는 말을 가슴에 담았다.

 

  몸은 늙었지만, 마음이 너그러워야 존경받는 세상이다. 나잇값을 못 하면 항상 외롭다. 외로움은 돈으로 해결할 수 없다. 외롭지 않으려면 능력을 갈고닦아야 한다. 어른이라고 여과 없이 함부로 말하면 관심 밖의 사람이 된다. 손주들은 나보다 스마트폰을 더 좋아한다. 이젠 그들과 함께 할 때가 지났으니 다른 궁리를 찾아야 한다. 나의 훈육 방식은 확실히 시대에 뒤떨어졌다. 요즘 젊은이 생각보다 우위라고 착각하지 말자. 비록 경험과 지혜는 부족하지만, 신지식은 월등히 앞선다. 인생의 크고 작은 문제로 걱정과 불안에 싸여 있을 때 이를 해결할 수 있는 통찰력과 안목을 심어 주는 일이 내가 해야 할 일이다.

 

  노년에 가장 좋은 친구는 배우자다.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미소 짓는 게 행복한 부부다. 내가 느낀 감정을 상대도 똑같이 느낄 거라고 쉽게 생각하는 일은 착각이다. 상대가 내 마음을 모르는 건 지극히 당연하다. 나이가 들면 나약해지면서 성격이 자기중심적으로 변한다. 복지관에는 아직도 가부장적인 사고로 아내를 힘들게 한 노인을 볼 수 있다. ‘간 큰 남자 시리즈’에는 아내가 잔소리할 때 말대답하거나 눈을 똑바로 뜨고 쳐다보는 남자가 간 큰 남자라고 한다. 남녀의 위치가 바뀐 시대의 대표적인 시리즈다. 지금도 가부장적인 사고로 부부생활을 하고 있다면 그것은 착각이다. 황혼이혼이 늘어난 이유다.

 

  지난 5월에는 87세 C 씨를 만나 인생 노트 사업에 멘토 역할을 했다. 그는 죽음을 앞두고 자서전 만들에 나섰다. 영정사진을 찍고 누구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은 한 많은 사연을 용서와 화해라는 이야기로 삶을 정리하는 내용이다. C 씨는 7년 전부터 별거 생활을 하고 있다. 이유는 남편 의처증세가 갈수록 심해 생명의 위험에 느꼈기 때문이다. 자식 넷 중 막내딸이 미혼이라 함께 살기를 원했지만, 거절당했다면서 사연을 털어놨다. “자식들을 자신의 분신으로 여기고 키웠는데”라며 분통을 터트렸다. “때로는 서러워서 눈물만 나오고 기(氣)가 막혀 억울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잘 못 살아왔다고 후회하지만, 이젠 다 소용없는 일이라면서 긴 한숨을 내쉬었다. 남의 일이 아니라 내 일이라 생각해 보니 정신이 번쩍 든다.

 

  노인의 경험이나 지혜가 더 이상 필요 없게 되었다. 세상을 더 살았다고 아는 체하면 그것은 착각이다. 노인은 적자를 늘리는 귀찮은 존재로 취급하는 부정적 시각이 많다. 스마트폰이 세상을 바꾸었다. 오히려 젊은이에게 묻고 배워야 할 일들이 늘어났다. 아무리 산전수전 다 겪은 경험 많은 노인이라도 빠르게 변한 세상을 살아가려면 새롭게 배워야 한다. 세월은 빠르다. 손녀와 내 생각이 착각의 톱니바퀴가 아니라 정상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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