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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 칼럼> 행복을 생각하며

김두수

장상옥 | 기사입력 2024/11/05 [21:30]

<시니어 칼럼> 행복을 생각하며

김두수

장상옥 | 입력 : 2024/11/05 [21:30]

▲ 김두수 전 국민은행 지점장

 

엊그제 사소한 문제로 아내와 다퉜다. 평소와 달리 아내를 두둔하는 아들에게 그만 감정이 폭발하고 말았다. 거친 언사가 쏟아져 나왔다. 한바탕 폭풍우가 지나가고 난 후 착잡한 마음에 공원 산책길에 나섰다. 걷는 순간 분노는 눈 녹듯이 사라지고 후회가 그 자리를 채웠다. 곧이어 마음에 평온이 찾아왔다. 행복이란 무엇일까? 지금까지 행복을 착각하면서 살아온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행복이란 무엇일까? 저마다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기에 개념이 단순하지 않다. 굳이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행복은 기분을 좋게 하는 감정이다. 여기에 관련된 말 중엔 권력과 부, 명예, 성취와 더불어 가족, 사랑, 건강, 감사, 마음의 평화 등이 함께한다. 행복을 말하는 수많은 위인 중 가장 마음에 와닿는 사람은 쇼펜하우어다. 그는 행복을 외부적인 조건이나 환경이 아니라 자기 마음이 행복을 만들어 간다.’고 했다. 그러면서 행복은 멀리서만 보이고, 다가서면 사라져 버리는 신기루와 같다.’고 했다. 행복 자체 보다 찾아가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얻는 기쁨이 아닐까.

 

가족을 빼놓고 행복을 얘기할 수 없다. 지금껏 가족의 행복에 가장 중요한 가치는 경제적 풍요라 착각했다. 보릿고개를 경험하면서 빈곤 탈출이 삶의 최우선 과제였다. 치열한 경쟁을 통해 성취를 맛보며 행복감을 느꼈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가족의 소중한 가치는 소홀히 했다. 그러는 사이에 가족 간의 관계도 변했다. 물질적인 빈곤이 많이 해소되었다고는 하나 집안에 온기가 부족하다. 다행히 아내는 성격이 적극적이어서 대화를 자주 한다. 딸은 논리적이면서도 까칠한 성격이기는 하나 허물없이 사이가 좋은 편이다. 반면에 아들은 회사에서 귀가하면 씻고 방에 들어가면 그만이다. 늦게 얻은 자식이라 지극 정성으로 키웠는데, 마치 유리 벽 사이에 두고 있는 느낌이다. 엊그제 일은 그동안 방치해 왔던 행복의 의미를 일깨워주는 계기가 됐다.

 

당연한 얘기지만 행복을 생각할 때 가족처럼 빼놓을 수 없는 게 건강이다. 왜냐하면 건강만큼 가정의 행복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도 없기 때문이다. 돈을 잃으면 다시 벌면 되지만 건강을 잃으면 모든 걸 잃는다. 건강한 생활 습관을 지키면서 규칙적인 운동과 균형 잡힌 식사로 신체의 건강을 잘 유지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건강하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 가끔 찾아오는 불면증 외에 나 역시 아직은 특별히 건강상의 문제는 없다. 하지만 불면의 밤을 지새우고 나면 이튿날 컨디션이 말이 아니다. 건강을 제대로 챙기지 않는 삶은 행복한 삶이라 할 수 없다.

 

은퇴 후 번잡한 도심을 벗어나 쾌적한 환경에서 살고 싶었다. 그래서 선택한 곳이 하남 미사강변도시다. 이사를 온 지도 어느새 7년이 지났다. 잠실과 접근성도 좋고 한강을 끼고 잘 조성된 공원과 주거환경은 기대를 충족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예전에 비해 경제적인 여건도 나아졌고, 가족의 건강에도 큰 문제가 없이 삶에 만족하고 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이 어딘지 모르게 허전하다. 마음 터놓고 대화할 상대가 없다. 아파트 이웃집 사람들을 봐도 목례만 할 정도다. 특별한 계기가 없으면 사람 사귀는 일이 쉽지 않다. 살만한 정도가 되었으니 아쉬운 소리 할 일도 없고 잘 모르는 사람과 괜히 신경 쓰며 살기 싫다는 이유일 게다. 카톡이나 유튜브 등 통신수단의 발달도 한몫하고 있다. 이런 삶이 행복하다고 하기엔 어쩐지 씁쓸한 생각이 든다.

 

행복이 기분을 좋게 하는 다양한 감정이라고 했을 때, 그건 나만 느끼는 주관적인 감정이다. 내가 즐겁고 이웃이 즐거우면 더 좋을 텐데, 살아온 과정을 보면 나의 성공에 집착하는 삶이었다. 진정한 행복은 사람과의 훈훈한 관계에서 오는 데도 그걸 착각하거나 무시하며 살았다. 세상 사람들로부터 수많은 혜택을 받고 살면서도 말이다. 이런 삶이 행복한 삶이라 할 수 있을까. 가진 것이 많아서가 아니라 작은 것이라도 나눌 줄 아는 따스한 가슴을 갖지 못해서다. 앞으로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지혜도 가져야겠다.

 

세상이 정신이 없을 정도로 빠르게 변하고 있다. AI가 온통 세상을 지배해 가고 있는 느낌이다. AI 열풍으로 미국 증시는 연일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세월도 상승 곡선을 이루며 빠르게 흘러간다. 사람들의 가치관도 달라지고 있다. 노인 대열에 들어선 나는 변하고 있는가.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나이가 들면 좀 더 감성이 풍부해져야 하는데, 고집만 센 꼰대 같아 당황스러울 때가 많다. 특히 가족을 대하는 태도에는 아직도 고정관념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내 모습에 한심한 생각이 든다. 어떤 글에서 사람은 나이가 들면 미움받기 쉽다. 가족, 친지, 친구들이 섭섭하게 해도 서러워하지 말자. 그냥 너그러운 마음으로 감내하면서 살아야 한다.’ 라고 했다. 내가 변하면 마음도 행복하다.

 

아침에 눈을 뜨면 살아 있음에 감사하고, 매일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아내도 감사하다. 사랑하는 가족이 건강함에 감사하다. 어디 이뿐이랴. 둘러보면 이 세상 모두가 감사로 넘쳐난다. 일상의 작은 것에도 감사를 느낄 수 있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란 말도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큰 것에만 행복이 있는 줄로 착각하고 거기에 집중하며 살았다. 일상의 작은 일에도 관심을 갖고 감사라는 나무를 내 마음의 밭에 심어야겠다.

 

행복은 우리 삶의 궁극적 목표이자 지향점이다. 그중에서도 건강과 가정의 행복은 이 사회를 지탱하는 기본이다. 물질적인 부가 향상되면 행복은 저절로 따라오는 거라 착각했다. 일상의 작은 곳에서부터 가까운 이웃으로 감사와 나눔의 열기가 전달될 때 행복지수도 높아지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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