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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 칼럼> 친구의 뒷모습

임병량 시니어 기자

장상옥 | 기사입력 2024/12/04 [15:55]

<시니어 칼럼> 친구의 뒷모습

임병량 시니어 기자

장상옥 | 입력 : 2024/12/04 [15:55]

 

▲ 임병량 기자     

 

  우리는 초등학교를 함께 입학한 죽마고우다. 가난한 시대였지만, 우정만은 풍부한 부자였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관계가 강한 철판보다 두꺼워졌다. 시월 마지막 주일, 나뭇잎이 물들고 호수가 있는 일산에서 세 명의 죽마고우가 만나는 날이다.

 

  공공기관 월간지 기자가 우리를 취재하고 싶단다. 약속 시간에 상면하여 칠십여 년의 뒷모습을 나눴다. 기자는 장소를 옮겨가면서 가을의 풍경과 어우러진 모습을 연신 사진에 담았다. 좋은 추억은 해가 갈수록 빛이 나고 울림이 오래간다. 노인은 추억을 먹고 산다는 말을 우리가 체험하고 있다. 어느새 팔순을 바라본 세월을 맞이한다. 지난주에는 가평 자연휴양림에서 막걸리 한 잔으로 추억을 쌓았다.

 

  C는 7남매 중 장남이다. 그의 생각은 나이가 들수록 청춘이다. 뒷모습은 내공의 향기가 풍기고 따뜻하다. 친구와 함께 있으면 추운 날 아랫목에 있는 느낌이지만, 더운 날은 아이스크림처럼 시원하고 달콤함이 오감으로 나타난다. 마음과 영혼이 평안해서 오래도록 같이 있고 싶다.

 

  C의 부친이 하늘나라로 소풍을 떠난 5년 후에야 들었던 소식이다. 자식들이 보내준 용돈을 은행 적금으로 저축해서 만기가 되었다. 아버지는 목돈을 장남에게 유산으로 남겼지만, 아버지를 설득해서 동생들을 찾아다니며 목돈의 절반은 가장 어렵게 사는 동생에게, 나머지는 가족 수에 따라서 배분했단다. 어디 그뿐인가 형편이 어려운 조카들 학비까지 아무도 모르게 지원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한 마디로 오른손이 하는 일은 왼손도 모른다는 감동적인 미담이다.

 

  부모님 재산 문제로 형제들이 갈라지고 심지어는 막가파로 가는 뉴스가 자주 등장한 세상이지만, C의 품성은 형제간을 더욱 견고한 마음의 끈으로 이끌었다. 형제들은 합심하여 따뜻한 사회의 축을 만들어 주변의 칭송을 받고 있다. 평안은 가정에서부터 출발한다. 부모님은 하늘나라에서 자녀들의 다정다감한 삶을 내려다보면서 얼마나 흐뭇하실까. 모두가 친구처럼 의좋은 형제로 따뜻하게 살아가기를 희망하지만, 오히려 편이 나눠지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어 안타까운 사회다.

 

  C는 퇴직을 앞두고 기술고시 최고령 합격자로, 세간의 눈길을 끌었다. 친구가 이끈 동우회는 참석률이 높다. 그 이유는 축령산 숲속에서 풍기는 '피톤치드'와 같은 향기 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는 소통과 배려, 이해와 공감으로 눈높이를 맞춘다. 만나면 반갑고 헤어지면 보고 싶은 사람, 마음 그릇이 에메랄드처럼 느껴온 감정이 나만의 생각인가.

  노년은 곧 여가와 동급으로 취급된 시대라고 말하지만, 백수가 과로로 숨진다는 말에 한 표를 던진다. 노인대학, 정보화 교실, 독서 모임 등에서 공부하면, 우울증과 치매는 자동으로 예방되고 건강은 덤으로 따라온다는 걸 다 알고 있다. 다만 실천하지 못해서 나락으로 빠져들 뿐이다.

 

  친구는 자기 관리도 잘한다. 오는 12월에 기술고시 보충 시험에 대비하고 있다. 시험이 끝나면 만나자고 약속해 이달은 만남 없이 통과했다. 보고 싶지만 기다려야 한다. 피를 나눈 형제는 아니지만, 그 이상 제2의 가족이다. C의 선한 영향력을 닮고 싶지만, 어렵다.

 

  여행을 함께 다닐 수 있는 친구가 있어 좋다. 궁합이 맞는 사람과 함께 누리면 세상을 얻는 기분이다. 건강하게 살려면 여행을 떠나라고 하지만, 이 또한 말처럼 쉽지 않다. ‘인생은 두 발로 걸을 수 있을 때까지다’란 말이 있다. 우리 중에 누구 하나 아프면 여행은 그림의 떡이다. 내가 건강해야 친구도 행복하다.

 

  친구는 이십 대 청년처럼 공부하고 있다. 가슴속에 이심전심의 안테나가 세 가족 카톡방으로 이어진다. 어제 통화 내용은 “열심히 책을 읽어도 다음 장으로 가면 잃어버린다. 마음이 따라주지 않는 게 나잇살인가 보다. 모든 일은 때가 있다.”고 하소연한 음성이 귓전에 맴돈다. 시험이 끝나면 수고했다고 꼭 끌어안아 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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