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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굿바이 코로나19

윤달현 대한노인회 경기도연합회 노인자원봉사센터장

장상옥 | 기사입력 2023/09/02 [05:15]

<기고> 굿바이 코로나19

윤달현 대한노인회 경기도연합회 노인자원봉사센터장

장상옥 | 입력 : 2023/09/02 [05:15]

 

▲ 코로나19 방역 마스크를 쓰고 강의를 하고 있는 윤달현 경기도연합회 자원봉사센터장



 

기다리고 기다렸던 건 아니었다. “양성입니다.” 라는 간호사의 병명을 듣는 순간, 어차피 맞을 매라면 빨리 맞는 게 더 좋지 하는 심정이었다. 한여름에 먹구름이 다가오듯 코로나19는 회사동료, 형제와 가족 곁에까지 다가왔다.

 

1년 전까지만 하여도 감염이 되면 어디 어디 갔었냐고 캐묻고, 음압병실에 보름 동안 격리시킨다는 죄인 취급 하더니만, 언제부터인가 계절 독감이니 감기니 하면서 모든 사람들이 한 번쯤 앓고 잊히는 사랑병이 되어버렸다.

 

그렇지만 매일 뉴스에서 위중환자 몇 명, 오늘 사망자가 몇 명 하는데, 왜 이 순간 사망자의 숫자가 아른거리는지 모르겠다. 간호사가 건네주는 ‘코로나19 신속항원검사 양성확인서’를 받았다. 마치 코로나19 확진 판정은 은행에 있을 때 지방으로 쫓겨 가는 인사발령문서 같았다.

 

무거운 발걸음은 집으로 향했다.

간호사가 힘주어 말한 “어디 가지 마시고 집에서 자가 격리하셔야 합니다.”라는 이야기 소리가 발걸음을 더욱 무겁게 만들었다. 점심시간 짬을 내어 코로나19검사를 받았다. 

 

절반쯤 마신 커피도 책상 위에 있고, 묶여있던 서류를 확인하기 위해 펼쳐놓은 문서로 책상은 너저분한데 어쩌나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사람이 죽고 사는데 그건 아무것도 아니다 라며 하늘을 쳐다보았다. 

 

10여 년 전에 끊었던 담배가 생각났다. 병원 문턱에 들어설 때 보였던 맑게 갠 하늘과 노랗게 봉우리 진 유채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양성”이란 이야기를 듣고 제일 먼저 떠오른 여인은 아내였다. 아파트 비빌번호를 누르고 들어선 몸은 운동경기에서 패하고 돌아온 것처럼 아내의 얼굴을 마주 볼 수가 없었다. 눈물을 보여주기 싫어 어금니를 꽉 깨물고 5일치의 약봉지를 움켜쥐고 방으로 도망치듯 들어왔다. 

 

어린아이처럼 학교에 가지 않고 7일 동안 집에서 논다고 마냥 좋아할 수도 없고, 코로나 증세가 목이 칼칼하고 근육통, 두통, 누구는 오한, 고열까지 통증이 온다고 하는데 그러한 통증이 피부로 몸속으로 다가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머리를 흔들고 핸드폰을 잡아 사무실에 연락했다. 전화기 속에서 “몸조심하고 건강관리 잘해요. 그리고 건강한 모습으로 다음 주에 봅시다.” 누구누구도 확진되었다며 격려의 이야기가 힘차게 흘러나왔다.

 

침대에 벌렁 누웠다.

재택치료! 빈손으로 집 밖으로 뛰쳐나온 이재민처럼 어떤 준비도 없이 갑작스럽게 7일간 재택 치료를 하라니 앞이 캄캄했다. 주변에서 “그 사람 코로나 걸렸대.” 일주일동안 집에 있어 좋겠네. 별 의미 없이 한 이야기가 부메랑이 될 줄이야.

 

휴가라면 해외여행이라도 훨훨 떠나겠지만, 그것도 아니고 사지 멀쩡한 놈이 집안에서, 오래 전 정치인이 가택연금으로 창밖을 바라보는 모습을 TV에서 본 듯한 모습으로 팔짱을 끼고 창문 밖 멀리 보이는 공원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어느 연휴에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집안만 있던 때도 있있지만, 타인에 의해 “꼭 집안에만 있어야 합니다.” 라는 이야기를 들을 때, 마스크 쓰고 외출하고, 산책해도 누가 아나? 이마에 ‘나 코로나 걸렸어’ 라고 쓰여 있는 것도 아니고 정말 인간의 마음 한쪽 구석에는 청개구리의 심보가 있는 것 같다. 

 

안방문 밖에서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속담이 있잖아요. 그동안 쉬고 싶어도 쉬지 못했는데 얼마나 좋아요, 나라에서 강제로 쉬라 하는데 고마워해야지 쉴 때 쉬어요.” 아내의 말소리가 야트막하게 들려왔다. 그 소리도 차갑게 귓가에 멈추었다.

 

몸 어느 구석 아픈 곳도 없는데 약까지 주고, 식후 30분 후에 먹으라고 한 약은 쩍 벌어진 휴지통에 던져버렸다. 휴지통에 폭 박힌 약봉지를 바라보면서 나라에 돈이 남아도나, 코로나 확진만 되면 휴가도 주고 약도 주고, ‘왕년에는 이래도 한겨울에 얼음으로 샤워를 한 놈이야 감기로 죽기까지 하겠어.’ 하면서 코로나 검사를 받은 일에 후회가 되었다. 감기 몸살인 것 같은데 약국에서 쌍화탕이나 하나 마실 걸 그랬나 하는 생각도 스쳐갔다.

 

그런데 밤 10시가 넘어서부터 낮에 핸드폰으로 코로나 증세를 본, 그 징조가 몸속에 실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온기가 따스하게 살아있던 발가락도 차가워지고, 침대에 곱게 누웠던 몸이 쑤시고 아프고 무릎이 뽑혀 나가는 것처럼 몸 둘 곳이 없다. 

 

가슴도 답답하다. 손을 이마에 얹어보았다. 열은 없는 것 같기도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평상시에는 아내가 이마를 짚어 보고는 “엄살이네.” 하면서 고운 손가락으로 이마를 톡 쳤다. 순간 건넛방 저쪽에서 곤히 잠을 자고 있는 아내에게 투정도 못하고 야속하게 보였다.

 

약, 약을 찾았다. 

저녁에 버렸던 휴지통 안을 굶주린 망아지가 먹잇감을 찾듯 약봉지를 찾았다. 한밤중에 이런 행동을 누군가 TV드라마로 시청한다면 저 사람 정신이상자라고 할 것 같아 얼굴에서 미소가 흘렀다. 손에든 약봉지도 ‘너도 어쩔 수 없는 인간이구나.’ 라며 따라 웃는 것 같다. 역시 전문가들이 하는 일은 인정해야 돼, 타인의 직업에 왈가왈부 하지 말라는 어른들의 이야기가 가슴에 와닿았다. 잠은 쉽게 오지 않았다.

 

약을 방금 먹어 그런가. 눈에 힘이 솟고 머릿속도 커피를 마신 것처럼 맑아졌다. 방 천장에서 지난달에 읽었던 프랑스의 소설가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가 펼쳐졌다.

 

 



해변의 마을에서 쥐의 떼죽음을 징조로 인간에게 퍼지는 열병, 세상이 타락하여 질병이 왔다며 남 탓하기도 하고, 또 보이지 않는 신을 찾는 사람도 벽 천장을 타고 왔다 갔다 한다. 열병을 앓는 환자가 10명, 20명, 40명, 마구 늘어나면서 사망자도 그에 따라 늘어나 묘지가 모자라 여러 명을 한 구덩이에 쓸어 담듯 하더니만 상황이 더욱 악화되자 여자남자 구분 없이 한곳에 매장을 하고…‥. 

 

밤이 깊었다. 멀리 보이는 불빛이 별빛으로 겹쳐 보였다. 다시 페스트 소설은 이어졌다. 봉쇄지역을 탈출하려고 의사에게 미감염확인서를 발급받으려는 사람, 의약품과 식료품을 봉쇄지역에서 자체 해결하기 위한 아비귀환, 그러다가 전쟁 때 비 오듯 퍼부은 포탄이 어느 날 아침 휴전으로 언제 그랬느냐는 식으로 멈춤 전쟁,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던 페스트 질병이 봄 눈 녹듯이 사라지는 것처럼 나는 잠 속에 깊이 빠져들었다.

 

다음날 잠에서 깨어보니 태양이 창문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일주일을 방구석에 꼼짝 않고 누워 있으면 월급은 제대로 나오나? 지난달 오후 8시가 좀 넘어 식당에 도착한 때가 떠올랐다. 사업하던 친구는 자신 때문에 저녁이 늦어 미안한지 그때 삼겹살에 소주를 간단하게 하자고 했다. 

 

식당 사장은 9시에 영업을 종료해야 한다며 발을 동동 굴렸다. “시간이 되면 일어날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라며 안심을 시키고 삼겹살을 구워가며 소주를 마셨다. 역시 친구와 담소를 나누며 마시는 소주와 삼겹살은 한 시간으로는 모자랐다. 술도 시간도 모자랐다. 식당 주인은 학교에 다니는 자식의 학비가 모자랐을 것이다. 

 

굽지 못한 삼겹살 한 토막은 주인의 배려로 고깃값에서 제외되었는데, 고집부려 값을 계산할 걸 하는 생각에 코끝이 찡하다. 그날 밤 9시쯤이 되자 식당 주인은 울상 짓는 얼굴로 민원이 들어간다나. 뭐래나. “영업시간을 어기면 벌금이 3백만 원이에요.” 라는 목소리가 귓가를 울린다.

 

침대에 누워있는 두 팔을 힘껏 뻗었다.

3일이 지나 4일째부터는 봄기운에 겨우내 얼어붙었던 흙덩어리가 새싹에 밀려 돋아나는 것처럼 온몸에 힘이 솟았다. 샤워도 하고 칫솔에 치약을 힘차게 묻혔다. 창문을 활짝 열었다. 시원한 봄바람은 산수유와 매화향기를 콧속으로 끌고 와 쿵쿵거리는 심장으로 들어왔다.

 

몇몇 지인들은 코로나에 감염된 것을 어찌 알았는지 ‘넘어진 김에 쉬어 간다고 이참에 누워서 며칠 쉬라, 또 어떤 이는 당신은 인간성이 좋아서 이 와중에 위험을 무릅쓰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나 봐 ’ 하는 소리가 달콤하게 들려왔다. 

 

훌쩍 커버린 자식들은 아빠 건강 괜찮으세요? 어디 아픈 곳은 없지요? 시도 때도 없이 전화벨이 울리고, 구치소에 있는 동료를 위해 사식을 넣어주듯 맛나는 음식을 보내주고 특히, 아내는 아내대로 하루에 두세 번씩 창문을 활짝 열어 환기시키고, “아플 때일수록 잘 먹어야 돼”라며 쉼 없이 부엌에서 도마소리, 지지고 볶는 요리강습시간이다.

 

내일은 사무실로 출근하는 날이다. 

책상에 놓인 ‘코로나19 신속항원검사 양성확인서’ 가 보였다. 일주일 동안 집안에 착실하게 있었던 것도 부끄럽지 않다. 용지 한 장 속에 사회적 거리두기로 해마다 부모형제가 모여 차례나 제사 지내던 일 그리고 장례식장, 결혼식장, 돌잔치 무수한 모임들이 멈추었다. 

 

이제는 코로나로 멈추었던 일들이 봄날 아지랑이처럼 사라지길 종이 한 장에 담아본다. 

 

▲ 윤달현 경기도연합회 자원봉사지원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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