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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1207 웰다잉과 학문(7)- 자살 시도자들의 놀라운 연구 결과

<특별기고> 송계순 부천웰다잉문화연구원 원장

장상옥 | 기사입력 2021/12/11 [19:30]

#23 1207 웰다잉과 학문(7)- 자살 시도자들의 놀라운 연구 결과

<특별기고> 송계순 부천웰다잉문화연구원 원장

장상옥 | 입력 : 2021/12/11 [19:30]

 

 

▲ 송계순 부천웰다잉문화연구원 원장



사망의 원인이 자발적인 경우는 윤리적 문제를 분명하게 논의할 과제로 본다. 그리고 비자발적인 경우는 히틀러와 아우슈비츠를 떠 올리게 하는 반인륜적 행위로 본다. 안락사의 경우 누군가가 살해한다는 느낌보다는 자비 사(고통 없는 죽음으로 도와주는 것)이던 어떤 표현을 쓰던 의도적인 삶의 중단이란 점은 같음으로 과연 삶을 의도적이냐 아니냐? 하는 것이다. 

 

안락사 논쟁의 우리나라 입장은 ①연명의료 보류 중지 시행의 경우와 ② 의사 조력자살 또는 의사 조력 사망은 가치관에 따라 허용해야 한다. 하지 말아야 한다. 논란이 계속 이슈화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죽음(Dr Death)의 의사 잭 케보키언/Jack Kevorkian 참조>

 

미국의 병리학에서 자살 기계를 뜻하는 타나트론/Thanatron은 한쪽으로는 링거 바늘을 통해 생리 식염수, 한쪽으로는 수면제와 함께 독약이 들어간다. 치료 불가능하고, 죽음을 선택 그 의지가 확실한 경우 이 기계를 설치해 환자가 버튼을 누르면 식염수와 수면제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독약을 투입 결국 환자의 자살을 도와준다. 이 사실을 자신이 미국 TV 보도 프로그램(60분)에 제보함으로서 충격을 주었다. 그래서 그는

고살죄를 적용 8년의 수형을 받았으나 보석으로 나와 안락사 권리 운동을 했다. 1997년 미 오리건주에서는 법을 제정했다. 그런데 “과연 죽음을 원한 환자들이 모두 그 죽음의 버튼을 눌렀을까? 신청자의 60%만 나머지 40%는 누르지 않았다.

 

법의학자로의 견해는 죽음과 인연이 깊은 삶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이 아닌 삶이다. 죽음을 생각하고 살피고 돌아보는 과정에서 삶의 경건함과 소중함이 더욱 절실해지는 것이다. 시스코타인에 의한 사망은 년 400여 명에 이른다, 대법원의 살인 미수를 포함하면1,000명에 이른다. 우리나라의 경우 1년에 인구 10만 명당 1명이 타살이다. 병사 중에 암으로 인함이 150명으로 1위란다. 자살이 2위로 24.3명 당뇨, 간 질환보다 많고, 교통사고 사망자 수보다 2배 이상이다.    

 

 2017년에는 자살 12,000명 이상으로 명백(유서)하지 않은 것을 기타 또는 불상으로 처리한다. 

 

자살을 꺼려하는 분위기로서 실제 자살자 수는 통계청 발표보다 5~25% 많을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경우는 0.2~0.5명이 타살이다. 미국은 5~6명 우리나라보다 약7~8배나 더하다. 멕시코는 19~20명. 니카라과, 온두라스, 베네수엘라는 50명이 넘는다. 북한은 0명이다. 그러나 국제보건기구에서는 4~5명으로 추산한다.

 

다큐멘터리 <<The Bridge“다리”>> 미국 샌 프 랜 시스 코 ‘금문교’의 투신 자살자들을 촬영해서 만든 다큐멘터리이다, 2004년 중 매일 새벽부터 해가질녁까지 주변에 설치한 카메라를 통해 23명 자살자의 투신 현장을 담아 보여준다. 그중에 구출자와의 인터뷰 내용을 보면 “뛰어내린 순간 나는 인생에서 해결할 수 없는 일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방금 다리에서 뛰어 내렸다는 사실을 빼고는요”했다. “뛰어내리고 처음 떠오른 생각은 ‘방금 무슨 짓을 한 거지’였다는 것이다. 나는 죽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는 서울 대 의대 정신건강의학과 안용민 교수가 자살 시도자를 진료하면서 들은바 연구내용과 놀랍게도 일치한다.

 

“생각이 실행되는 것은 아무에게나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사회적 교류가 단절된 상태에서 죽음에 대한 관념이 지속적으로 조금 더 구체화 된다.“ 그리고 ”엄청난 용기의 결과다.“ ”본인의 원인 때문에 통제력을 잃은 후 오랜 시도의 결과이다.“ “진정으로 죽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죽음의 이유는 모두 각자의 삶 속에서 찾아야 한다. 따라서 주변에 자살자의 준비를 눈치 채서 그의 삶의 방향을 돌려 세워야 하고 시도를 막아 새로운 빛으로 도와주어야 한다. 이것이 우리의 의무이다.

 

죽음과 친숙한 삶이야말로 더욱 빛나고 아름다운 삶이다. 이것이 죽음으로 삶을 묻는 이유다. 한 번뿐인 삶! 되돌릴 수 없다. 신 삼국지 드라마의 ^조조^의 마지막 유언 죽음은 서늘한 여름과 같다. 과거에도 사람들이 나를 오해했고 현재도 사람들이 나를 잘못 알고 있고, 미래에도 사람들이 아마 나를 잘못 알고 있겠지만 나는 그것이 두렵지 않다.

 

사육신(死六臣) 중의 한 사람이 성삼문(成三問)의 유서이다. 북치는 소리 사람의 명을 재촉하는데 황천에는 주막 하나 없다 하던데 오늘 밤은 뉘 집에서 묵고 갈꼬. 죽음을 준비한다는 것은 삶을 정리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죽음 이후를 시작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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