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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실향민, 고향땅에 지팡이 너머 휠체어 타고라도 가련다!

이영진 전 한양대특임교수

장상옥 | 기사입력 2024/03/19 [07:15]

<기고> 실향민, 고향땅에 지팡이 너머 휠체어 타고라도 가련다!

이영진 전 한양대특임교수

장상옥 | 입력 : 2024/03/19 [07:15]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를 보았다. 그런데 아니야! 아니야! 실향민들은 지팡이 짚고 안되면 휠체어 타고라도 그 강(임진강)을 꼬옥 건너서 고향땅 에 가보고 싶어. 죽기전에 가봐야잖아 그래서 악착같이 걷기 운동하고 노인대학도 다니는건데....

 

오늘이 돌아가신 아버님 기일(3.15)이라 안치된 파주시 동화경모공원에서 제사 지낸후에 임진각으로 향한다. 어머님 고향(개풍군 중면 덕수리)을 보기 위해서다. 부부가 함께 고향에 가서 장인장모한테 인사를 가자고 약속 했건만 이제는 다시 혼자서 가야 하신다며 내 죽기전에 갈거야 하며 입을 굳게 다문다.

 

임진각에서 평화 곤돌라를 타고 드디어 그 강(임진강)을 건넌다. 독개다리와 자유의다리가 훤히 보인다. 저 끊어진 독개다리가 철도다리야. 내고향은 장단역에서 조금만 걸어가도 되는데....“경의선 장단역 증기기관차”라고 쓰여진 팻말을 손으로 한참을 쓰다 듬으면서 말없이 쳐다본다.

 

1.4 후퇴(1951년)때 피난민으로 난리 북새통에 11살 어린동생과 함께 임진강을 건너려다 밤이라 어둑어둑하고 행여나 빠져 죽을까봐 동생은 놔두고 스무살 나이에 혼자서 나룻배(쪽배) 타고 겨우 건너와서 73년을 버텨왔건만 아직도 못가본다니....임진강은 건넜건만 군부대 때문에 내고향은 볼수도 없다며 이젠 지팡이도 힘이 들다며 다음엔 휠체어 타고 와야 할 것 같다고 넋두리 하신다. 

 

임진강이 비록 강폭이 좁아 보여도 온통 갯벌이라 한번 빠지면 헤어나오기가 정말 어렵다며 엎드려서 기어서 나올수 있지만 밤에는 그것도 어려워 전쟁통 피난시절에는 여기서 빠져죽은 사람도 많다고 하신다. 내가 스무살에 피난와서 지금 95살(1930년1월28일생)이니 이제 실향민들도 얼마 안남았지. 모두들 내맘같을 거야... 하시다가 

 

“에구 니들이 그맴을 알기나 하겠어?” 하다가 끊어진 철로에 앉아서 먹이를 먹고 있는 까치를 바라보면서 “ 차라리 새 라면 하늘을 날아서 고향에 가보기나 할텐데 실향민은 저 새 들만도 못한 것 같아 하시면서 훨훨 날아가는 새들을 따라 북녘 하늘길을 바라보신다. 고향을 향한 그리움이 짙게 그려진다. 

 

실향민 2세인 저도 환갑을 훌쩍 넘은 나이다. 1983년 KBS가 이산가족찾기 생방송할 때 기억이 생생하다. 4개월여간 진행된 생방송에 어머님의 부모님등 가족의 이름을 적은 팻말과 종이를 들고서 몇시간 동안, 온 가족이 번갈아가면서 앉아 있었던 기억이다. 결국엔 이산가족을 찾지도 못했지만 이 마저도 아련한 추억이 된 셈이다. 

 

어머님의 혼자말이다. 내년에는 혹시 갈수 있으려나? 이젠 가족 아무도 없겠지만 내가 어릴적 놀던 고향땅은 그대로 있을 거야. 스무살까지 고향에서 놀았으니 기억이 많이 난다며 초등학교도 가보고 싶고 꽃이피던 마을에서 뛰어놀았는데....그러시다가 어머님이 나의살던 고향은... 하고 노래 부르신다. 노랫말을 몰라 하시기에 자식들이 따라서 부른다.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 울긋불긋 꽃대궐 차리인 동네 그속에서 놀던때가 그립습니다.. 어머님이 고향의 봄을 노래하는데 정작 어머님보다 자식들이 눈에 눈물이 글썽인다. 실향민 2세도 40여년간을 부모님의 애틋한 고향을 향한 심정을 잘알기에 같은 실향민의 마음인 것이다. 

 

 

▲ 이영진 전 한양대특임교수



실향민 어머님의 옛 이야기들이 이제는 마음에 와닿는다. 실향민2세도 대부분 60세-70세니 말이다. 세월의 흔적은 찾아볼수 없지만 어머님의 옛 이야기는 살아서 자식들 귓전을 울린다. 오래오래 사셔서 기어코 고향땅을 밟아 보게 해드려야 하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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