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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문익점의 목화씨, 강희맹의 연꽃씨

임병택 시흥시장

장상옥 | 기사입력 2024/03/28 [00:16]

<기고> 문익점의 목화씨, 강희맹의 연꽃씨

임병택 시흥시장

장상옥 | 입력 : 2024/03/28 [00:16]

▲ 임병택 시흥시장




 

고려 말 유학자 문익점은 사신으로 원나라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목화씨를 숨겨온 일화로 매우 유명하다. 목화씨를 붓두껍에 숨겨 가지고 왔는지 여부를 두고 진실공방이 있긴 하지만, 그가 우리 토양에 맞는 종자를 가져와 심었고, 이 무명의 보급으로 인해 조선시대 백성들의 삶이 크게 변화했다는 데에는 논쟁의 여지가 없다. 문익점의 목화씨는 당대 백성을 추위로부터 지키는 힘이자, 이후 조선 의복생활 혁신의 시작점이 됐다.

 

뿐만 아니라 문익점의 무명은 조선 초기 화폐로 활용되며 경제 혁명의 씨앗이 되기도 했다. 세종실록에서는 백성의 이()를 일으켰으니, 그 혜택을 생민(生民)에게 입힘이 어찌 적다고 하겠습니까?”라며 문익점이 백성의 삶에 가져온 변화를 크게 기록했다.

 

문익점이 가져온 목화씨앗은 당대 백성의 삶을 윤택하게 했을 뿐 아니라 한반도 경제의 혁신을 가져왔다. 이처럼 문익점과 같이 작은 씨앗으로 큰 변화를 만들어낸 인물이 있다. 연꽃이 일렁이는 시흥의 정취와 이곳에서 터를 잡고 일상을 영위하는 시흥시민의 삶을 더 풍요롭게 피워낸 사람, 바로 사숙재 강희맹이다.

 

강희맹은 조선 초기 최고의 문장가로 불렸다. 세종부터 성종까지 6대에 걸쳐 관직생활을 했고, 화가 강희안의 동생답게 그림에도 매우 뛰어났다. 경국대전, 동국여지승람 등 수많은 편찬사업에 참여했다고 알려졌고, 저서로는 촌 노인들의 극담을 나눈 소화집인 촌담해이’, 농서(農書)인 금양잡록, 시가와 산문을 엮은 시문집 사숙재집등이 전해져 내려온다. 특히 본인의 호를 딴 사숙재집에서 세종과 인재 등용 기준에 대해 나눈 문답은 현재까지도 인사의 기준처럼 여겨지는 명문이다.

 

세조 9(1463)에는 중추원부사로서 진헌부사가 되어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남경에 있는 전당지에 들러 당시까지 국내에 없던 새로운 종류의 연꽃씨를 가지고 귀국하게 된다.

 

그 연꽃이 바로 전당홍이다. 다른 연꽃과는 달리 꽃의 색이 희고 꽃잎은 뾰족하며 꽃의 끝부분이 옅은 담홍색을 띤다. 강희맹은 이 연꽃을 지금의 하중동 관곡지에 심었고, 이 연꽃이 차츰 널리 퍼지며 연꽃 마을을 이루게 됐다.

 

시흥시에는 21만평 가량의 대규모 연꽃 재배지가 있다. 관곡지에서부터 연꽃테마파크까지 이르는 이곳 연꽃 무리의 향과 아름다움의 기세는 여름이면 절정에 달한다. 연꽃이 피는 마을(연성)이라는 지명 역시 여기서 유래했다.

 

현재 시흥의 연꽃테마파크에는 100종이 넘는 연꽃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작은 못에서 발아한 연꽃은 지금에 이르러서는 전국 관광객이 연중 방문하는 대형 단지로 자라났다. 관곡지의 고즈넉한 아름다움과 일렁이는 연꽃 무리는 지금도 시흥의 여름을 상징한다. 오래전 자연과 문학을 사랑했던 한 문인이 뿌린 씨앗의 결실을 지금 우리는 보고 맡고 누리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이를 지키고 가꿔온 후손들의 손길이 켜켜이 쌓여있다. 농로 주변에 심은 코스모스는 가을이 되면 바람에 휘날리고, 연꽃들 사이로 길게 뻗은 그린웨이에서는 자전거 바퀴가 힘차게 돌아간다. 농부들의 성실함은 시흥연근의 속살을 부드럽고 달큰하게 만들었고, 시흥의 어른들은 꽃잎 하나, 여린 잎 하나까지 소중히 여길 수 있는 마음을 우리 아이들에게 가르쳐 나가고 있다.

 

올해는 강희맹 선생의 탄생 600주년이 되는 해다. 올해 시흥시는 선생의 정신과 업적을 기리기 위한 다양한 기념사업들을 진행하게 될 거다. 명나라에서부터 전당홍 연꽃씨를 쥐고 고국으로 향한 선생이 꿈꿨을 시흥의 모습과, 애민정신으로 내딛었을 그 발걸음을 기억하며. 현재의 우리가 심어낼 또 다른 미래를 그려보면서 말이다.

 

한겨울, 얼어붙은 호수 위를 가만히 들여다본다. 누렇게 바랜 풀들은 거칠고 황량한 바람이 귓가를 스친다. 그러나 머지않은 날에 이곳에서 연꽃은 다시 얼굴을 내밀 것이다. 푸르고 발간 생명력을 가득 담고, 또 다시 그렇게 피어날 것이다. 그것이 수 세기 전 강희맹 선생이 먼저 알았던 파종의 섭리다.

 

강 속의 달을 지팡이로 툭 치니, 물결 따라 달그림자 조각조각 일렁이네잠잠한 수면 위, 빛이라고는 달뿐인 아주 고요한 공간. 하나의 손짓으로 이지러지는 달빛의 모습이 눈에 그려지는 듯하다. 그리고 그 달은 지금도 선생이 심은 연꽃 위에서 고요히 빛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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